[신율 칼럼] 여론 속 '섬'이 되어가는 보수 정치의 위기

 
11
[신율 명지대 교수]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변'을 기대했던 보수 유권자들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변이 일어나야 현재 추락하고 있는 국민의힘에서 '회생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지금의 '늪'에서 벗어나 '회생'해야 한다는 것은 비단 보수층만의 희망은 아닐 것이다. 현재와 같이 민주당 일변도의 정치 상황은 자칫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도 국민의힘 내부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선출된 최고위원 중 두 명 정도만이 '친탄파'로 분류될 수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반탄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선거인단 75만 3,076명 중 33만 4,272명이 투표해, 투표율 44.39%를 기록했다. 이는 과거 전당대회 투표율보다 낮은 수치이다. 한동훈 전 대표를 선출한 작년 전당대회의 투표율은 48.51%였고,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치러진 2022년 3월 전당대회의 투표율은 55.10%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투표율의 높고 낮음과 '이변' 발생 가능성이 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이준석 의원이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된 2021년 6월 전당대회다. 당시 전당대회 투표율은 45.36%로, 이번 전당대회 투표율보다는 높지만 결코 높은 투표율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연소 야당 대표를 탄생시키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이변 또는 전략적 투표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투표율보다는 당원의 인적 구성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즉, 2021년 당시에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의 필요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당원들이 다수였기에 이러한 이변이 발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당원들 중 상당수는 지금 국민의힘을 탈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의원의 탈당과 개혁신당 창당으로 인해 젊은 보수층이 국민의힘을 떠났다는 분석이 많다. 또한 지난 12·3 계엄으로 인해 합리적 보수 혹은 중도적 보수 세력의 상당수도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이들이 떠난 자리는 강성 보수 세력에 의해 채워졌다. 물론 중도 성향의 당원들이 모두 탈당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국민의힘의 분위기에서는 투표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기권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중도 성향 또는 합리적 보수 성향의 당원들이 탈당했거나 투표에 기권했기 때문에 2021년의 '중도 지향적 국민의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렇듯 강성 당원들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 데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구속, 특검 수사, 그리고 강성 유튜버 전한길 씨의 부상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과 전한길이라는 구심점의 등장으로 강성 보수들이 결집했고, 그 결과 이들의 목소리가 전당대회를 지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반탄파' 두 사람이 당 대표 경선에서 결선 투표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반탄파들이 국민의힘 지도부를 장악하게 되면, 더불어민주당의 '내란 정당 프레임'이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거의 매일 '위헌 정당 해산'을 외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이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더구나 국민의힘 의원들에 대한 특검 수사가 가시화되면 이러한 '내란 정당' 프레임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민주당의 프레임이 여론을 파고들수록 국민의힘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도 점점 사라지게 된다. 원내에서 소수 정당이기 때문에 국민의힘은 장외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장외 투쟁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론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여론이 민주당의 프레임에 동조하게 될 경우, 여론의 지지를 얻기가 힘들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외 투쟁에 나서더라도 '자신들만의 저항 행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런 식이라면 내년 지방선거도 물 건너갈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는데, 필자는 이러한 우려를 '사치'라고 생각한다. 내년 지방선거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국민의힘이라는 정당 자체의 존립이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물론 국민의힘이 위헌 정당 심판을 받아 해체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만일 민주당이 위헌 정당 심판을 행동으로 옮길 경우, 그 역풍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이 실제 전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여론이 국민의힘을 완전히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국민의힘의 존립을 흔들 수 있음은 분명하다.
 
여론으로부터 고립된 정당은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매일 새롭게 특검의 수사 상황이 언론을 장식하고, 언론 역시 앞다투어 '단독' 기사를 쏟아내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의힘에서는 '반탄' 세력이 득세하고 있으니, 여론 속의 '섬'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당 대표도 '반탄' 후보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섬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보수의 가치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 전념해야 한다. 보수의 가치는 다양하다. 북한 인권 문제, 대북 지원 문제, 한반도 평화 유지 방식 등을 비롯해서, 또다시 지급 가능성이 있는 민생 회복 지원금 문제와 주한 미군 병력 감축 문제,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 다양한 것이다. 한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보수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이러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가치를 위해 투쟁'한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나마 현재 국민의힘에 덧씌워진 이미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들먹이는 것이 보수의 가치가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보여줘야만 그나마 희망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리고 다양한 가치의 공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진보의 주장과 생각만이 진리일 수 없음은 자명하기 때문에, 진보만이 보이는 사회가 건전할 리는 만무하다. 국민의힘이 건강한 보수 세력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