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인공지능(AI)은 재론의 여지가 없이 미래 성장의 핵심동력이다. 한국의 반도체산업만 하더라도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생산에 중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생산에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사활을 걸다시피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 그리고 대만의 TSMC가 HBM 반도체를 생산해 미국의 엔비디아에 납품하면 엔비디아는 이를 이용해 GPU를 만들고 이 GPU가 각국의 인공지능 제조에 활용되는 구조다.
미래 산업에는 인공지능이 사활을 결정할 전망이다. 특히 고임금 시대 제조업이나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는 데이터 산업 시대에서는 인공지능이 필수적이다. 앞으로 범용인공지능(AGI)이 나오면 거의 인간을 대체하게 되어 인공지능 활용 여부가 미래 경제력을 좌우하게 될 전망이다.
한국도 지난 8일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가 출범식을 갖고 닻을 올렸다. 전날 발표된 이재명 정부 조직개편안에서 과학기술부총리가 17년 만에 부활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에 AI 정책 전담 부서를 설치하기로 한 것과 맞물려 ‘AI 3대 강국 도약’을 향한 걸음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국가AI전략위원회 위원장은 대통령이 직접 맡았고 부위원장 등 50명이 위원회에 참여한다. 국가AI전략위원회는 전 정부 시절인 지난해 9월 처음 출범했지만, 이재명 정부는 위원회의 역할을 확대·개편해 이재명 정부가 목표로 삼은 AI 3대 강국 도약 달성의 전반적인 틀을 짜는 역할을 위원회에 맡길 방침이다.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AI고속도로 구축’은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중 20번째 국정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이 대통령은 출범식에서 “국가 경쟁력과 미래 번영을 좌우하는 핵심 동력으로서 AI 같은 첨단기술은 국력이자 경제력이고 안보역량이기도 하다”며 “도태될 위험에 노출된 추격자 신세가 될 것인지, 무한한 기회를 누리는 선도자가 될 것인지, 대한민국은 거대한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말하는 AI 3대 강국의 비전은 단지 희망 섞인 구호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핵심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AI 전략 수립을 위한 ‘4대 원칙’도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포용적 AI 구현 △민관 원팀 전략 △AI 친화적 사회 전반 시스템으로의 정비 △AI 균형발전 네 가지를 AI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적 원칙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AI 고속도로 구축이란 수십 수백 개의 데이터센터 구축을 의미한다. 아무리 좋은 인공지능이라고 할지라도 데이터가 없으면 속빈 강정이다. 따라서 수십 수백 개의 데이터센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각 데이터센터는 수백개의 컴퓨터가 24시간 쉼 없이 가동되어야 한다. 수백개 컴퓨터가 24시간 쉼 없이 가동되려면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값싸고 양질의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한 중장기 정책 수립 논의에 착수하고 예산을 증액 배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떼어 환경부에 넘겨 기후에너지환경부로 확대 개편하는 정부 조직 개편 방안이 확정된 가운데 새 정부의 ‘재생에너지 대전환’ 정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부문을 떼어 환경부에 넘기는 안에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적지 않았다.
한편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서울 여의도 한국에너지공단 서울지역본부에서 ‘제6차 신재생에너지 기본계획’(신기본) 수립을 위한 실무 총괄분과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신기본은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른 법정 계획으로, 10년 이상의 중장기 계획 기간을 설정하고 5년마다 수립·시행한다.
11차 전기본에는 작년 기준 33.3GW(기가와트)인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연평균 7.8GW씩 증가시켜 2030년 78GW로 만든다는 계획이 담겼는데, 이 목표를 더 높여 잡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발전설비 설치 보조, 융자 지원 대폭 확대 등 지원을 확대하고, 해상풍력 단지 구축을 위한 계획 입지 발굴,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산단·영농형·수상 등 태양광 입지 다각화 및 지방자치단체의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완화 등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막대한 예산과 금융지원도 추진된다.
이날 6차 신기본 수립을 위한 실무 총괄분과 회의에서 산학연 전문가 및 유관기관으로 구성된 실무작업반에서는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보급 상향 로드맵’ 수립, 재생에너지 산업을 미래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재생에너지 산업경쟁력 강화’ 방안 등을 마련한다. 주민참여형 이익공유 모델을 확산하고, 국민 참여 활성화를 위한 방안 등도 중점 논의한다.
그러나 경제성 측면에서 비교한다면 잘 알려진 대로 원자력 발전이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24년도 kWh당 평균 발전단가를 보면 원자력 66원, 유연탄 144원, LNG 176원, 태양광 136원이다. 풍력은 이보다도 비싸다. 원자력의 경제성은 다른 발전원 특히 재생에너지를 압도한다. 여기에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까지 고려해 24시간 상시 공급한다는 기준으로 환산하면 비용은 최소 4배 이상 증가한다. 재생에너지 보급률이 높은 국가들의 전기요금이 비싼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환경성 면에서도 온실가스 배출량, 차지하는 면적, 물질 소모량 등으로 판단해 보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비슷한 수준이지만 앞서 언급한 간헐성에 의해 24시간 상시 공급한다는 기준으로 바꾼다면 재생에너지를 보조하는 수단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만약 가스 발전을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온실가스 발생량은 원자력에 비해 40배 증가한다. 여러 지표를 비교해 보면 원자력이 우수하고 안전한 에너지로 특히 우리나라에는 가장 적합한 에너지라고 평가할 수 있다. 탈원전을 주장해 오던 독일 등 유럽도 원전으로 돌아선 배경이다. 트럼프는 태양광 풍력은 사기라고 주장하며 예산을 90% 삭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원전을 300기 추가 건설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의 비싼 산업용 전기요금도 문제다. 미국, 중국 등 주요 경쟁국보다 50% 이상 높아지면서 국내 제조업계의 ‘탈한전’ 행렬이 빨라지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전 유통망을 거치지 않고 도매시장 가격으로 전력을 직접 구매하거나 자체 발전 설비를 확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부가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누적 적자를 이유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잇달아 인상하면서 산업계의 불만과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은 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을 크게 높여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일본은 풍부한 천연자원과 발전 효율을 기반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대규모 국영 발전소를 통해 가격을 통제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미국(121.5원/kWh), 중국(129.4원/kWh), 일본(약 140원/kWh) 등 주요 경쟁국 대비 약 50% 이상 높은 190.4원/kWh 수준이다. 불과 3년 사이 70% 가까이 인상되면서 제조업계의 비용 부담은 급격히 커졌다.
전기 다소비 업종인 철강, 석유화학, 비철금속, 디스플레이, 시멘트 등에서는 전기요금이 제조원가에서 10~20% 이상을 차지한다. 급격한 전기료 부담 증가는 원가 상승과 수익성 악화를 불러와 생산 축소와 투자 위축 우려를 낳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전력 사용량 상위 10대 기업의 추가 비용만 1조원에 육박한다. 특히 전기로 방식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기업은 제품 원가에서 전력 구입비가 10~20%를 차지한다. 포스코는 부생가스와 LNG 자가발전 설비로 전체 전력의 약 80%를 자체 생산해 비용 부담을 다소 줄이고 있다. 동국제강은 전기요금 할증이 붙는 6~8월 압연공장을 야간에만 가동하는 ‘야간 조업’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연간 전기료 부담은 여전히 3000억원에 육박한다. 현대제철은 국내 전기료 부담이 크다는 점을 들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대규모 제철소 투자를 결정했다. 루이지애나주의 산업용 전기 요금은 MWh당 52.8달러(약 7만7900원)로 국내 18만2000원 대비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풍부한 천연가스 공급 덕분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9.4%가 자가 발전이나 전력 직접구매 등 새로운 전력 조달 방식을 도입할 의향을 보였다. 탈한전’은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을 넘어 산업계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35GW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30년까지 78GW 이상으로 2배 이상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비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설비 투자와 송배전망 보강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은 한전에 집중되고 있다. 한전은 약 40조원의 누적 적자를 기록 중이며 부채는 200조원을 상회하고 있다. 한전은 전력망 유지와 신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에 56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재정난 속에서 설비 투자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동시에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기존 산업부가 관장하는 에너지정책실 조직 중 에너지정책관·전력정책관·재생에너지관·원전산업정책국·수소경제정책관 등 조직이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새 정부의 재생에너지 전환 관련 정책은 새로 탄생하는 기후에너지환경부 주도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 정부의 원전 업무가 둘로 쪼개진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 정책을 환경부가 맡아 ‘기후에너지환경부’로 개편되고 원전 건설은 기후부, 수출은 산업부가 맡게 됐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을 맞춘 기후부가 미래 전략산업의 기반인 에너지 정책을 책임지는 데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탈원전’ 오점을 남긴 문재인 정부에 이어 새 정부가 ‘탈원전 시즌2’를 자초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산업과 에너지 정책의 분리 땐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당장 기후부가 에너지 정책을 탄소 중립에 맞춰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값비싼 재생에너지는 인공지능(AI) 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전망이다. 이 때문에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고속도로와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는 인공지능고속도로는 양립하기 힘들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의 비전은 한국 경제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인데 달성이 힘들 우려도 대두된다. 그런데도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고속도로는 막대한 보상금 지급이 불가피한데 민주당의 표밭인 서해안에 치중하고 있는 점도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밖에도 원전의 건설·수출 이원화가 원전 생태계를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신규 원전 건설과 기술 투자에 소극적인 나라의 원전을 과연 어느 국가가 선택하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는 우리나라의 혁신형 소형모듈원전(i-SMR)과 스마트100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한국 원전은 밖에서 높게 평가받는데 안에서는 되레 홀대받는 모양새다.
국내 원전 생태계가 튼튼해야 해외 수주도 가능하다. 규제 부처에 정책을 맡기고 수출 강국이 되겠다는 발상은 모순이다. 지금은 이념에 발목을 잡힐 때가 아니다. ‘SMR 특별법’을 만들어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식재산권 협의를 조정해 300기를 건설하겠다는 미국에 한국형 원전의 수출 길을 열면서 값싼 전기료를 바탕으로 인공지능면에서도 3대 강국으로 도약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통화연구실장 ▷금융경제연구원 부원장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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