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병 시사평론가]
지난해 4월 10일 치른 22대 총선은 야권의 압승이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심판은 태풍처럼 매서웠다. 그중에서도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가장 신선한 뉴스가 되었다. ‘3년도 길다’며 윤석열 정권의 조기 종식을 내세운 조국혁신당은 창당 불과 한 달 만에 12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으로 대변되는 거대 양당체제에 대한 국민의 반감은 예상보다 컸다. 게다가 강한 개혁성을 표방하며 민주당에 실망한 표까지 흡수하는 전략적 승부수도 절묘했다. 그럼에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국혁신당을 창당한 주역, 조국 전 대표였다. 비록 국민의 비판을 받는 범법자이긴 하지만 검찰의 과도한 수사로 인해 가정이 쑥대밭으로 변해버린 것을 알고 있기에 조국 전 대표의 검찰개혁 화두는 국민의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윤석열 정권과 ‘검찰 공화국’을 향해 비수를 꺼내 든 조국혁신당의 선명성은 총선 돌풍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조국 전 대표가 최종 유죄로 확정되고 의원직을 잃은 채 감옥에 들어가자 조국혁신당의 존재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취약했다. 활동이 없어서가 아니다.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의 분투는 기대 이상이었다. 박은정·신장식 의원 등의 국회 활약상도 돋보였다. 그럼에도 최근 공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조국혁신당 지지율은 2.7%에 불과하다(9월 8일 자료). 이쯤이면 아예 존재감을 내세울 수 없을뿐더러 3개 의석인 개혁신당에도 밀리고 있다. 물론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조국 전 대표의 최근 매끄럽지 못한 언행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바닥권 지지율은 적잖은 충격이다. 이대로 가는 것은 ‘당 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뭔가 특단의 쇄신책이 절박한 시점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바로 이 즈음 국민의 공분을 촉발한 당내 대형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다. 강미정 조국혁신당 대변인이 지난 4일 당내 성 비위 및 괴롭힘 사건과 관련해 “당이 피해자의 절규를 외면했다”며 탈당했다. 자신도 성 비위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10명쯤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 귀를 의심했다. 어느 정당보다 도덕성과 개혁성을 표방했던 조국혁신당에서 정말 그런 일이 있었을까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다. 성추행과 성희롱, 직장 괴롭힘은 물론 이에 대한 피해자들의 눈물마저 당은 사실상 외면했다.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다. 1년 전부터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으니 당내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성추행과 괴롭힘 등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이건 상식 이하가 아니라 제정신이 아닌 셈이다. 그동안에 겪었을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 두려움을 생각하면 참으로 분노가 치민다.
이번 당내 성추행 사태와 관련해 조국 전 대표는 한마디로 ‘몰랐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변명을 믿지 않는다. 자신이 대표로 있던 1년여 전부터 경찰이 수사를 하고 있었는데 몰랐다니, 그게 말이 되는가. 심지어 감옥에 있을 때도 당 여성위원회 고문이 곡진하게 열 쪽의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하지 않은가. 그 편지도 뭉갰다는 것인가. 그럼 감옥에서 정말로 스쿼트와 팔굽혀펴기만 했다는 얘기인가. 조국 전 대표답지 않은 궤변이요, 무책임한 변명으로 들린다. 조국 전 대표마저 이렇게 나오면 정말 곤란하다. 길거리의 장삼이사들이나 정상배들과는 결이 다를뿐더러 국민은 여전히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큰 정치인이라면 최소한 그만큼의 품격은 책임져야 한다.
조국혁신당이 성추행 사태의 후폭풍에 휘말려 침몰 위기로 치닫자 의원총회를 열어 조국 전 대표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당내 반론도 적지 않았다지만 지금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당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조국 전 대표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풀어낼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모르쇠 하면서 뒤로 빠지면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조국 비대위원장 체제가 가야 할 길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먼저 이번 성추행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가해자와 그 조력자들에 대한 읍참마속의 결단이 시급하다. 그러면서 재발방지책은 물론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동시에 당 복귀를 서둘러야 한다. 이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칼의 힘’이다.
조국 비대위원장 체제는 타이밍도 나쁘지 않다. 지금의 정세가 검찰개혁의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마침 여권 내부에서도 검찰개혁에 대한 불협화음이 들리면서 다소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조국혁신당의 선명한 목소리가 가세한다면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조국 비대위원장 체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과 공수처, 그리고 사법부까지 개혁 드라이브가 본격화하는 시점에 조국혁신당의 마중물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라고 신생 정당에 12석이나 힘을 실어 준 것이다. 하나 더 짚을 것은 인적 쇄신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사단’이니 하는 구태 이미지로는 가망이 없다. 마침 내년 6월에 지방선거가 있다. 여기서 가시적 성과가 없다면 비전도 없다. 그렇다면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통해 강호의 유능한 인재들을 과감하게 발탁해야 한다. ‘조국’이라는 브랜드 가치는 아직 살아 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침몰 직전인 조국혁신당을 구해 내는 특유의 승부사적 리더십을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시사평론가(현) △인하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전) △혁신과미래연구원 원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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