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 ODA는 그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저개발국을 돕는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에 대응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약 6억 7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에너지ODA는 이들에게 당장 필요한 빛을 제공할 뿐 아니라 공장과 학교가 돌아갈 수 있게 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전력망에서 떨어진 곳에 신재생에너지를 보급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받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도록 기여한다.
지난 수년간 에너지 분야 ODA 예산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개발도상국 내에서도 청정에너지 전환 수요가 늘어나면서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발전과 전력 보급을 위한 배전 인프라 투자 비중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는 개도국에 대한 공여일뿐 아니라 자국 산업의 진출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독일, 일본 등 주요 공여국들은 자국의 기술력과 산업 역량을 바탕으로 저마다 차별성 있는 에너지 ODA 전략을 전개하며 성장하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흐름에 올라탈 필요가 있고, 좋은 조건 역시 가지고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을 갖춘 기업들이 있고, 스마트그리드 및 전력망 자동화 기술에서도 앞서 있다. 고효율 조명, 냉난방, 산업용 설비 등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어 개발도상국의 에너지 난제를 해결하는 데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업들의 의지도 상당히 높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에너지 관련 기업의 72%가 향후 5년 내 그린에너지 ODA 시장에 진출할 의향을 갖고 있었다. 정부가 보다 전략적인 ODA를 통해 개도국 시장 진출의 주춧돌을 놓아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성공적인 에너지 ODA에 필수적인 민-관의 결합, 기술과 제도의 결합은 국책연구기관을 비롯한 연구부문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예컨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정책의제를 설정함으로써 개별 프로젝트가 만들어질 수 있는 바탕을 만들고, 민관협력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과 지역들을 선별하며, 다자개발은행(MDB)과의 공동연구·공동사업을 통해 국제 호환성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른 선진공여국 역시 연구기관들이 민-관의 정보 및 비전 공유를 위한 장을 만들고, 기획을 위한 기초연구와 엄밀한 평가를 통해 정책의 개선을 추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에너지 ODA는 사람의 삶을 바꾸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며 산업의 활로까지 열어주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좋은 의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일관된 철학, 근거 기반의 전략, 실용적 협력이 있어야만 ODA는 일회성 원조가 아니라 공동 번영의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성공 비결을 끊임없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색, 민-관의 유기적인 협력과 효과적인 정책평가 및 환류 체계에서 찾는다. 에너지 ODA는 우리의 장점이 빛날 수 있는 기회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제 그 기회들을 현실로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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