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평생을 시민 곁에서 현장 중심 의정을 펼치며 민생을 살폈다. 작은 민원에 귀 기울이며 이를 제도 개선으로 연결해 온 그의 의정 철학은 ‘생활정치의 실현’이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서울시의회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그는 늘 소통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았다. 시의원을 아우르며 서울시 집행부와 협치를 통해 시민에게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다.
그런 그가 이제 서울을 넘어 전국 지방의회 목소리를 대표하게 됐다. 19대 대한민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회장으로 선출되면서다.
지방의회의 중심이자 맏형 격인 서울시의회 의장이 전국 지방의회를 대표하는 자리에 오른 것은 지방자치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최 의장은 지난 11일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협의회 회장으로 스스로를 “전국 지방의회의 심부름꾼”이라고 자처하며 제1과제를 ‘지방의회법 제정’으로 못 박았다. 그는 “‘지방자치를 뿌리내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며 지방자치 30년을 넘어 진정한 지방의회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다음은 최 의장과 일문일답한 내용.
-회장으로 선출된 소감은.
“17개 광역의회를 대표하는 자리가 협의회 회장이다. 사실 제가 하고 싶다고 먼저 말씀드렸고 동료 의장님들이 믿고 뽑아주셨다. 지방자치를 조금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국회와 가까운 서울시의회 의장이 회장을 맡으면 그만큼 자주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겠나.
10년 넘게 지방의원으로 일하며 지방자치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법적 기반은 여전히 미비하고 재정은 중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 열심히 뛰겠다.
어깨가 무겁다. 시의원 시절에는 지역구 일이 제 몫이었다. 의장이 되고 나서는 서울 전체가 제 책임이 됐다. 협의회 회장이 된 지금은 전국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그만큼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협의회를 소개해 달라.
“협의회는 17개 전국 광역의회 회장들로 구성된 협의체다. 불합리한 법령과 제도 개선을 위한 공동 활동을 전개해 대한민국의 지방분권과 지방자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협의회의 최우선 과제는
“지방의회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협의회의 제1과제다. 지금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 일부 조항에 기대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독립적 운영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방의회의 재정, 조직, 감사를 지방의회가 아닌 집행기관이 좌지우지하는 현실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국회에 국회법이 있듯 지방의회에도 독립된 법이 있어야 한다. 조직권·예산권·감사권 모두 집행부에 의존하는 현실에서는 진정한 견제와 균형이 어렵다.
집행부가 연주자라면 지방의회는 지휘자다. 하지만 지금 지방의회는 지휘봉도 악보도 빌려 쓰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조화로운 연주가 나오기 힘들다. 지방의회법 제정은 지방의회라는 지휘자에게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도구를 쥐여주는 일이며 지방의회를 지방의회답게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동안 법 제정이 무산된 이유는.
“20대와 21대 국회에서도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매번 계류와 폐기를 반복했다. 이렇듯 지방의회법이 끝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는 복합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앙과 지방 모두 지방분권을 외치지만 정작 중앙정부는 권한을 내려놓지 않는다. 지방의회법이 이런 현실과 맞물려 온전히 추진되지 못했다고 본다.
그러나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삶의 기초를 다루는 지방 유일의 입법기관인 지방의회가 바로 설 때 국회 입지도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법 제정을 위한 계획은.
"지방의회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할 지방의회법 초안을 마련하고 공론화를 거쳐 반드시 성사시키겠다. 연대와 협력 프로세스를 풀가동해 이번에야말로 ‘지방의회법 있는 지방의회 원년’으로 만들어 가겠다.
이미 올해 초 의장협의회 차원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간담회를 하고 지방의회법 제정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한 바 있다. 우 의장은 서울시의회 출신으로 지방의회 현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지난 7월 행안부 장관 청문회에서도 지방의회법 없이 곁방살이 중인 지방의회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처럼 국회와 중앙정부 내에서도 지방의회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변화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국회와 정부, 정당은 물론 시민에게까지 지방의회법 제정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
-지방재정 악화가 우려된다.
"서울시만 봐도 상황이 어렵다. 시민 요구는 많은데 임의로 세원을 늘릴 수도 없지 않나. 그런데 중앙정부는 예산 지원 없이 일을 떠넘길 때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르신 지하철 무임승차다. 정부가 결정했지만 비용은 전적으로 서울시가 부담한다. 코레일은 보전해 주면서 서울시는 외면하는 불합리한 구조다.
민생회복 소비쿠폰도 그렇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서울시에 부담을 떠넘겼다. 그 결과 서울시 빚이 3500억원이나 늘었다. 재정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해법은 뭔가.
“근본적으로는 지방세입 구조를 바꿔야 한다. 미국·일본·유럽 등 OECD 국가들은 지방세 비중이 전체 세수 중 40~50%지만 우리는 30%도 안 된다. 흔히 ‘3할 자치’라고 부른다.
지방소비세율을 25.3%에서 30%로 조정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세금을 더 걷자는 게 아니라 이미 낸 세금을 지방으로 더 돌려달라는 것이다. 그래야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다.
지방소비세율을 조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협의회 의장 간에 공감대도 확인했다. 지금이야말로 건강한 지방재정 확충 방안을 논의할 때다.
가장 건강한 재정분권은 지방의 자율세수를 늘리는 데서 시작된다. 정부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한다.”
-또 다른 과제는.
“저출생·기후변화·지방소멸·도시 노후화 같은 위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다. 해답은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지방의회가 최전선에서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이에 협의회 차원에서 ‘지역소멸 대응 특별위원회’ 같은 공동 대응 기구를 늘릴 것이다. 연대와 협력 구조를 강화해 전국적 차원에서 해법을 마련하겠다.”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목표는 같다. 시민이 서울시의회를 많이 알아주고, 의회에 일을 많이 맡겨주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의원과 직원들이 신바람 나게 시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지방의회법 제정부터 정책지원관 1대1 정수 확대, 별정직 전환과 같은 지방의회 공동 숙제를 최대한 매듭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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