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해 피해액 일부 또는 전부를 금융회사가 배상할 수 있도록 하는 '무과실 배상 책임'을 연내 법제화할 계획이다. 금융회사에 무과실 배상책임이 인정되면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범죄자에 속아 직접 자금을 이체했을 때에도 금융회사가 피해를 배상하게 된다.
보이스피싱 피해 확산을 막고 은행권의 책임감 있는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 논리는 대법원 판결과 상충하는 것이어서 은행에 책임을 묻게 되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게 된다.
대법원은 지난 15일 보이스피싱으로 명의를 도용해 비대면 대출을 받은 사건에서 은행이 본인 의사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다했다면 대출약정은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금융사가 운전면허증 제출, 본인인증, 전자서명 등 복수의 인증 절차를 거쳤다면 범죄자가 개입했더라도 정당한 이유가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도덕적 해이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법적 측면에서 피해자 측 과실이 전혀 고려되지 않으면 고의·과실 있는 피해자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기 등으로 제도가 악용될 소지도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추가 피해나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 확대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야기 되고 있는 '고신용자에게 고금리를 적용하라'는 이야기도 궤를 같이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저 신용자에 대한 대출 금리 15.9%를 두고 "고신용자에게 0.1%만이라도 부담을 더 시키고 그중 일부를 금융기관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저신용자)에게 싸게 빌려주면 안 되냐”고 말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저신용·저소득일수록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지금 금융 구조는 역설적"이라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했다.
금융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금리 부담을 낮추겠다는 의도와 달리 금융권에서는 시장원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출 금리는 신용 리스크와 비례해 결정되는데 이 대통령과 김 원내대표 발언 자체가 신용평가 체계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저신용자가 고신용자보다 낮은 금리를 적용받으면 신용도를 높게 유지할 유인이 줄어들고 이자율 제한은 저신용자의 자금 흐름을 악화시킬 수 있다. 2021년에도 취약계층에게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선한 의도'로 법정 최고금리를 연 24%에서 20%로 낮췄지만 실제로는 대부업 문턱이 높아져 저신용자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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