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③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영화감독으로, 댄 코버트의 여정과 다큐멘터리의 힘

댄 코버트 감독과 제프 맥페트리지사진 Andrew Paynter
댄 코버트 감독과 제프 맥페트리지[사진= Andrew Paynter]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으로 영화 연출에 나선 댄 코버트(Dan Covert) 감독은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를 완성하며 세계 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모션 그래픽, 그리고 영화 연출로 이어지는 그의 창작 여정은 단순한 직업적 이동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새로운 세계를 탐험해 온 과정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일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방식의 창작을 찾게 됐습니다. 디자인에서 모션 그래픽으로, 그리고 영화 연출로 넘어간 건 흥미가 줄어든 분야를 떠나 새로운 확장을 찾으려는 과정이었죠. 저는 쉽게 싫증을 내는 편이라 늘 창의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오는 혼란마저 즐기고 있어요.”

장편 다큐멘터리라는 도전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는 코버트 감독에게 첫 장편 다큐멘터리였다. 20년 넘게 단편 영화와 광고 연출에 익숙했던 그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편집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을 만났다. 특히 초기 편집본을 본 총괄 프로듀서 스파이크 존즈 감독은 “제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줘야 한다”라는 조언을 남겼고, 이는 작품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편집 버전을 거듭하며 감독은 영화가 가진 리듬과 중심을 찾아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즐거웠습니다. 결국 편집은 영화의 심장이었고, 제프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가 모든 과정의 핵심이었어요.”

아카이브와 우정이 만든 영화적 자산

코버트 감독은 화면에 담을 수 없는 제프 맥페트리지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별한 장치를 고민했다. 그때 큰 힘이 된 것은 사진작가 앤드류 페인터의 기록이었다. 오랫동안 제프의 삶과 작업을 카메라에 담아온 앤드류의 사진은 영화의 중요한 축이 되었고, 감독은 이를 “1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한 결정적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앤드류가 없었다면 지금의 영화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의 사진 덕분에 예술가 제프뿐 아니라 인간 제프의 친밀한 순간까지 보여줄 수 있었어요.”

예술가의 삶과 인간의 태도

이 영화는 단순히 한 아티스트의 작업 기록을 넘어, 한 인간으로서 제프 맥페트리지의 삶을 조명한다. 코버트 감독은 작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점점 작품만큼이나 그의 삶의 태도에 매료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미국 문화가 주입한 전형적인 ‘고통받는 예술가’의 어두운 면을 찾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프는 그런 이미지와 정반대였어요. 그는 울트라 마라토너이자 아버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삶을 균형 있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의 진정성이 영화의 중심이 되었죠.”

디자인 감각이 스며든 연출

그래픽 디자이너로 출발한 코버트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시각적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제프의 그림 속 기하학적 구도에서 촬영 언어를 정리하고, 다양한 형식을 리듬감 있게 엮으며 영화의 톤을 만들어냈다. “디자이너로서의 경험 덕분에 제프의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저 스스로도 예술가라는 점이에요. 텅 빈 방에서 하루 20시간을 그림에 몰두하는 두려움과 희망을 저도 잘 알기 때문에 그의 삶과 고민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죠.”

인간 제프, 그리고 감독 자신

카메라를 통해 발견한 것은 예술가의 작품 너머에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코버트 감독은 “그가 세상에 어떻게 가치를 두고 시간을 쓰는지가 인상 깊었다”며 그런 사적인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데 큰 의미를 두었다. 또한 맥페트리지와 함께한 시간은 감독 자신에게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와 함께하면서 일상의 시간을 더 의식적으로 쓰게 되었고,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어디에 둘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제프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공유하는 영화였죠.”

긴 여정을 완성한 원칙

장편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까지 4년, 개봉까지는 5년이 걸렸다. 코버트 감독은 “벽을 한 번에 세우려 하기보다 벽돌을 하나씩 쌓듯 나아갔다”며 꾸준함과 긍정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광고나 단편은 몇 주 만에 끝나지만, 장편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인내를 요구합니다. 다행히도 훌륭한 팀과 함께할 수 있었기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코버트 감독이 생각하는 좋은 아티스트 다큐멘터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가 만든 작업이 무엇인지를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영화’다. 그는 앞으로 같은 형식의 시각 예술가 다큐멘터리를 또다시 만들 계획은 없지만, 음악가나 감독, 혹은 다른 창작자의 삶에는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는 첫 극영화 집필에 집중하며 다음 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영화가 남긴 질문

“다음엔 어떤 프로젝트에 내 삶을 바칠 것인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댄 코버트 감독에게 남은 질문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을 기록하는 일과 닮아 있다고 말했다.

“누군가 말했죠. 만약 당신이 처음에 만들려던 그대로의 영화를 만들었다면, 당신은 듣지 않은 것이라고. 다큐멘터리는 결국 영화 자체의 목소리를 듣는 일입니다. 믿고, 귀 기울이고,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영화는 스스로의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됩니다.”

〈제프 맥페트리지: 드로잉 라이프〉는 그렇게 한 예술가의 삶을 담아내면서 동시에 댄 코버트라는 감독 자신의 성찰을 비춘 거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그는 우리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가장 소중한 자원인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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