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김건희 여사가 외부인들과 '차담회'를 할 때 종묘 영녕전의 신실(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공간)까지 둘러본 것으로 확인됐다.
김 여사가 종묘 휴관일에 국가유산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평소 관람은 물론이고 출입도 제한되는 의례 공간이 열렸다는 점에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일 국가유산청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인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여사는 작년 9월 3일 종묘 망묘루에서 차담회를 열기 전 영녕전을 방문했다.
김 여사는 외국인 2명, 통역사 1명과 함께 있었으며 이재필 궁능유적본부장도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영녕전 건물과 내부 신실 등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 일행은 종묘가 문을 닫는 화요일에 정문인 외대문이 아니라 영녕전 부근 소방문으로 들어왔고, 영녕전에서 5분 정도 머물렀다고 궁능유적본부 측은 설명했다.
궁능유적본부는 신실 개방 여부와 관련해 "(김 여사가 영녕전 일대에 머무르는 동안) 신실 1칸을 개방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참석한 사람 가운데 신실 (내부)로 들어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신실 문 바깥에서 내부를 관람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김 여사와 함께 있던 외국인 동행자는 유명 화가인 마크 로스코(1903∼1970)의 가족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는 2015년 코바나컨텐츠 대표 시절 미국 워싱턴DC 국립미술관(내셔널갤러리)이 소장한 로스코 작품 50점을 들여와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마크 로스코' 전시를 열었다.
신주(위패)를 모시는 신실은 종묘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안쪽에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신주장(神主欌)을 두고 양옆에는 의례용 상징물인 어보(御寶), 어책(御冊)을 보관하는 보장(寶欌)과 책장(冊欌)을 배치한다. 그 앞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
영녕전의 신실은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과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 봉행하는 큰 제사, 즉 대제(大祭)가 있을 때만 문을 연다.
궁능유적본부는 신실을 누가 개방하라고 지시했는지 묻는 의원실 질의에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에서 영녕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신실 1칸을 개방할 것을 지시해 개방하게 됐다"고 답했다.
문화체육비서관실은 차담회 전날인 9월 2일 오전 8시부터 종묘 일대에서 사전 답사를 했으며, 김 여사가 영녕전을 거쳐 망묘루로 이동하도록 동선을 짰다고 한다.
그러나 종묘 안에는 평소 보기 어려운 신실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국가유산청은 작년 5월 향대청을 개편, 태조 신실을 재현한 공간을 상시 공개하고 있다. 향대청은 과거 종묘제례 때 쓰던 향과 축문 등을 보관한 곳으로, 차담회가 열린 망묘루 바로 옆에 있다.
재현 공간이 있는데도 신실을 열게 했다는 것은 특혜로 볼 수 있다. 종묘관리소 측은 김 여사 방문에 앞서 영녕전 신실과 주변을 청소하기도 했다.
임 의원은 "김 여사 일행을 위해 영녕전 신실을 개방하라고 요구한 것은 명백한 '직권남용'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임 의원은 "관련 의혹이 국가유산 사적 이용으로 결론 나면 비용을 청구하고 담당자를 징계해야 한다"며 "국정감사에서도 진실을 파헤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묘 신실 개방을 놓고 국가유산청 내부에서도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윗선에서 장소 협조 요청이 있다고 해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는 장소가 종묘"라며 "비공개 행사라 하더라도 신실 개방은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궁능유적본부는 "(김 여사가 참석한) 종묘 차담회가 대통령실 행사라고 판단해 영녕전 (신실) 1칸을 개방해 안내했다"고 해명했다.
종묘는 조선(1392∼1897)과 대한제국(1897∼1910) 시대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국가 사당이다.
주요 건물 중 영녕전에는 총 16칸(실)의 신실이 있으며 태조의 4대 조를 포함해 역대 왕과 추존된 왕 15위, 왕후 17위,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신주를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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