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아리셀 판결의 교훈… 형식 아닌 구조의 안전으로

  • 이환민 법무법인 엘프스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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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환민 법무법인 엘프스 파트너 변호사] 
지난  9월 23일 수원지방법원은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사건 1심 형사재판에서 대표이사와 운영총괄본부장에게 각각 중대재해처벌법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등으로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3명의 근로자가 사망한 이 사고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자, 가장 중형이 선고된 사례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반적인 안전조치 미비를 지적했다. 참사 이틀 전 선행 폭발 사고가 있었음에도 같은 날 생산된 전지들을 발열 검사하거나 분리 보관하지 않았고, 파견근로자들에 대한 안전보건교육과 소방훈련도 없었다. 2021년과 2022년 세 차례 리튬전지 폭발 사고가 있었음에도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에서 이를 누락했다. 비상구와 비상통로는 가벽과 적치물 때문에 쉽게 이용하기 어려웠다.

대표이사는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의 부재,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업무절차의 부재, 재해 예방 예산 미수립, 안전보건관리책임자등을 평가하는 기준 결여에 따른 비상구 및 비상통로 유지의무 위반 발생, 대응조치나 구호조치 등에 관한 매뉴얼 미수립으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위반하였다고 판단했다.

특히, 재판부는 사업을 총괄하는 대표이사와 안전보건업무책임자 사이의 책임관계에 대하여도 중요한 법리를 제시하였다.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 등 안전보건업무책임자가 선임된 경우 대표이사 등 사업총괄책임자는 면책된다고 하면서도, 개별적인 사건에서 문제되는 안전보건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권을 사업총괄책임자가 행사한 경우 그가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서 대표이사가 경영 전반을 운영총괄본부장에게 위임했다 하더라도, 주요 업무를 모두 보고받고 사후적∙묵시적 승인하는 방식으로 처리한 점 등을 근거로 운영총괄본부장이 아닌 대표이사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을 인정하였다.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과 관련하여 몇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첫째, 형식적 CSO 선임은 면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실질적 권한 분리와 독립적 운영체계가 입증되어야만 대표이사의 책임이 제한될 수 있다. 둘째, 서류상의 체계가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충실한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이 없는 문서와 조직도만으로는 재해 예방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 셋째,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성평가의 충실성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위험성평가를 내실화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리셀 판결은 “누가 이름을 올렸는가”가 아니라, “누가 실제로 결정했는가”를 기준으로 책임을 묻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기업의 안전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이다. 대표이사가 안전의 기술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위험을 예측하고 책임의 구조를 설계하는 시스템의 설계자여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은 경영자에게 ‘위험을 통제하는 구조’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형식이 아닌 실질, 선언이 아닌 구조를 요구하는 법의 메시지를 다시 확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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