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채는 어디까지나 ‘빚’이다. 중앙정부의 승인 절차를 완화한다는 것은 지방정부가 스스로 통제해야 할 재정 자율권의 문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위기 대응보다는 단기적 성과를 위한 정치적 장치라는 의구심을 낳는다.
대표적인 예가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이다. 각 지자체는 정부가 추진한 소비쿠폰의 분담금 부담으로 재정 운영에 어려움을 토로해왔다. 중앙의 정책을 지방이 대신 집행하면서 재정만 축나는 구조 속에서 소비쿠폰 남발로 지방채까지 늘어날 경우, 자치의 의존성만 더 커질 것이다.
게다가 이미 대다수의 지자체는 지역개발, 축제, 선심성 보조금 등에 과도한 예산을 쏟아붓고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채무 발행의 문턱까지 낮추는 것은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갚아야 할 빚을 늘리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전국 지방채 잔액은 30조원을 넘어섰다. 일부 지자체는 이자상환액만으로도 예산의 상당 부분을 소진한 상황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부채 부담이 더 크고, 경기 변동에도 훨씬 취약하다.
물론 지방정부가 돌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할 필요성은 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율은 책임을 수반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회계 투명성, 시민 참여 예산제, 외부 감사 등 견제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발행 자율만 확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분권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지자체장의 단기 실적 경쟁과 선심성 예산이 맞물리면, 자치는 ‘빚잔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번 조치가 지방자치 30년의 역사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세월 동안 지방자치는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는 구조로 발전해 왔다. 이번 개정안은 중앙의 감시 없이 지방정부가 빚으로 재정을 메우게 함으로써, 자치의 의존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방자치 30년의 역사는 성취와 한계의 반복이었다. 주민참여와 정책 실험의 공간으로서 자치의 가치는 빛났지만, 재정·행정의 무책임이 반복되면서 중앙의 지원 없이는 버티지 못하는 구조도 공고해졌다. 자치의 본질은 권한의 확장이 아니라 스스로 책임지는 힘에 있다.
지방정부가 위기 대응 역량을 높이려면 채무 확대보다 제도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지방채 발행 상한제, 부채비율 경보 시스템, 회계 공개 의무 등 견제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시민이 직접 예산을 감시할 수 있는 참여 구조도 필수다. 지방재정법 개정이 자율의 확장이 아니라 빚의 확산으로 끝난다면, 우리는 30년간 쌓아온 지방자치의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빚을 줄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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