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정년 연장, 숫자보다 촘촘한 설계를

'정년 연장' 논의가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2013년 법정 정년을 60세로 끌어올린 지 12년 만이다. 이미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하면서 고령층의 소득 기반이 약화되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문제는 '정년 65세'라는 숫자와 그 추진 방식에 대한 세대·계층 간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만 60세인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연내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에 노동계가 연일 불을 지피면서 이해관계자 간 찬반 논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노동계는 일률적인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경영계는 급증할 비용이 부담이다. 

양대 노총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65세'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정년 연장이 고령자의 소득 공백을 막기 위한 제도인 만큼, 현행 임금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경영계는 인건비 부담과 청년 고용 악화를 이유로 맞서고 있다. 정년이 일괄 연장될 경우 고령 정규직 근로자가 늘어나면서 청년 취업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들은 늘어난 인건비를 감당하기 위해 신규 청년 채용을 축소할 가능성이 높다. 정년 연장이 고령자에게는 유리하지만, 청년에게는 고용의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대 신규 채용 비중이 2022년 1분기 51.4%에서 올 1분기 46.9%로 4.5%p 하락했다. 이는 8개 분기 연속 50% 미만으로,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청년층(15~29세) 취업자 역시 2022년 11만9000명 증가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14만4000명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의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의 매출 대비 인건비 비중은 18.1%로, 대기업(9.4%)의 두 배 수준이다. 준비 없는 정년 연장은 세대·노사·기업 모두에게 부담이 된다.

정년 연장은 단지 숫자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기업의 인사·임금 체계, 중소기업의 경영 여건, 청년층의 고용 기회와 미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흐름 속에서 은퇴 연령을 늦추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다. 그러나 속도만 앞세운 정책 추진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일률적인 정년 연장을 주장하는 노동계와 비용 부담을 우려하는 경영계의 입장 차를 조율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할 시간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노동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계속고용제' 등 다양한 형태의 고용 보장 방안을 탄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년 연장은 고령자의 생계 안정과 숙련 인력 활용이라는 긍정적인 목표를 담고 있으나, 실행을 위한 촘촘한 설계를 하지 않으면 세대 갈등만 초래할 수 있다.

'65세' 숫자 자체에 목표를 두면 자칫 제도만 남는 탁상행정에 그칠 수 있다.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고, 퇴직 이후에도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노동시장 구조를 만드는 것을 바탕으로, 기업·노동시장·세대별 여건을 반영한 현실적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

정부·노동계·경영계가 머리를 맞대 '세대 간 상생하는 노동시장'의 설계도를 그려야 한다. 오래 일하는 사회가 청년에게 닫힌 문이 되거나, 중소기업에 짐이 되는 구조여서는 안 된다.
 
산업부 이효정 차장
산업부 이효정 차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