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21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 사도광산에서 강제노역한 조선인 희생자의 한국인 유족들을 위한 추모식을 현지에서 열었다.
일본 측이 지난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약속한 추모행사를 형식적으로만 열고 조선인들의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데 따라 2년 연속 한국만의 별도 추도식을 개최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사도섬의 호텔 행사 공간을 빌려 한국 유족 7가족 11명과 이혁 주일 한국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은 애국가 제창, 추도사, 헌배 등 순으로 진행됐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 대사는 추도사에서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 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자 모였다”며 “80여년 전 이곳 사도섬에는 조선총독부 관여하에 모집, 알선, 징용 등 방식으로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해야 했던 많은 한국인 노동자 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노동자들의 두려움, 고립감 등은 유가족 마음에도 아픔과 슬픔으로 남았다며 유가족을 상대로 위로와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대사는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고 추모의 뜻을 나누는 것은 공감과 치유의 마음을 더욱 깊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일본 측이 주관한 추도행사에 불참했다. 일본 측이 조선인의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지난 9월 13일 연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에도 일본 정부 대표는 조선인 강제 노동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오카노 유키코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은 추도사에서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들”로 강제노역한 조선인을 지칭하면서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 모든 사도광산 노동자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모든 분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대상 시기를 에도시대로 한정해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외면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서 노역한 조선인 수는 1519명으로 알려졌다.
일본 측이 지난해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약속한 추모행사를 형식적으로만 열고 조선인들의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데 따라 2년 연속 한국만의 별도 추도식을 개최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사도섬의 호텔 행사 공간을 빌려 한국 유족 7가족 11명과 이혁 주일 한국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도광산 강제동원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을 열었다. 추도식은 애국가 제창, 추도사, 헌배 등 순으로 진행됐다.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 대사는 추도사에서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 분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자 모였다”며 “80여년 전 이곳 사도섬에는 조선총독부 관여하에 모집, 알선, 징용 등 방식으로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로 노역해야 했던 많은 한국인 노동자 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고 추모의 뜻을 나누는 것은 공감과 치유의 마음을 더욱 깊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일본 측이 주관한 추도행사에 불참했다. 일본 측이 조선인의 강제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사도광산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지난 9월 13일 연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에도 일본 정부 대표는 조선인 강제 노동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오카노 유키코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은 추도사에서 “한반도에서 온 노동자들”로 강제노역한 조선인을 지칭하면서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 모든 사도광산 노동자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모든 분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사도광산은 에도시대(1603∼1867)에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태평양전쟁이 본격화한 후에는 전쟁 물자를 확보하는 광산으로 주로 이용됐다. 이때 식민지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돼 혹독한 환경 속에서 차별받으며 일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대상 시기를 에도시대로 한정해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외면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사도광산에서 노역한 조선인 수는 1519명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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