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한국 경제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 우등생이라는 말은 이제 흘러간 레퍼토리가 되었고 열등생으로 전락하고 있다. 주력 수출시장인 중국이나 미국에서 한국상품의 위상이 크게 위축되면서 제조업 기반이 뿌리째 흔들린다. 특히 수도권보다 지방 경제에서 더 큰 곡소리가 들린다. 제조업의 젖줄이자 산업도시가 대부분 지방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정부도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는 꼴이다. 내년 6월에 지방 선거가 있지만 지방 자치는 지방을 살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를 방조하는 듯한 분위기다. 이대로 방치하면 지방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가 조만간 수도권으로 확산할 것이 분명하다. 그야말로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위기의 본질이다.
지방 제조업의 경우 전통 주력산업이자 중후장대(重厚長大)한 것이 특징이다. 무너지면 타격이 크고 걷잡을 수 없다. 그리고 수출산업이라 외부적 요인에 민감하다. 최근 중국 산업이 공급과잉으로 해외시장에 저가 밀어내기식 수출에 더해 트럼프發 관세 후폭풍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도 고스란히 지방 산업에 우선해서 전가되고 있다. 한편으론 고질적 장애 요인인 저출산·고령화의 직격탄도 지방에 훨씬 타격이 커 지방 소멸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다. 세계화가 변질하면서 한국 경제에 새로운 생존법이 요구되고 있지만, 전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기존 성장 방식이 한계를 노출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글로벌 환경이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 표류하는 중이다.
해고 공포로 자고 일어나기가 무서울 정도라는 지방 노동자의 신음이 끊이지 않는다. 전남 여수 석유화학 산단은 중국산 저가 공세로 빅3의 일감이 지난 2년 새 반 토막으로 줄었다. 대기업이 휘청하면서 중소 협력사들의 도산이 줄을 잇는다. 트럼프 관세 폭탄에 경부 포항 제철 공단은 찬 바람이 쌩쌩 분다. 경남 거제의 조선은 활황이라지만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나 해외 하도급 업체에만 해당하는 일이고 낙수효과가 거의 없어 도시는 썰렁하다. 7년 전 GM이 떠난 전북 군산은 이미 도시 경제가 반 토막 났다. 판매 부진의 여파라지만 강성 노조 리스크도 한몫했다. 후회한들, 돌이켜본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시의 후퇴는 삽시간이지만 다시 살리는 것은 수십 배 더 어렵다.
중국에 백기 들기에는 시기상조, 호랑이 굴에 빠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버스가 지나가도 한참 지나간 지금에서야 지방 경제의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청이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지 의문이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곪은 상처만 더 깊게 하고 근원적 치유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문제의 발단은 가격과 기술을 겸비한 중국 제조업의 부상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개선되기보다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제조업을 일거에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혹자는 쉬운 말로 AI·소프트웨어 등 다른 산업으로 말을 갈아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어진 여건이 달라 모든 지방이 하루아침에 환골탈태할 수도 없다. 설사 방향이 맞다 하더라도 점진적이어야 한다. 중국의 위협이나 영향을 벗어나야만 갱생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체로 견해가 일치한다. 다만 방법이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위험을 우리보다 먼저 이를 경험한 일본의 고민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의 지방을 8개 광역권으로 통합하여 지방 창생(創生) 전략을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물론 우여곡절도 있고 시행착오도 있어 보이지만 그나마 대안임은 확실하다.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하여 시도하려고 하지만 아직 첫 삽을 내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 지방의 고질적 병폐는 설익은 지방 자치로 인한 지방 정치의 고질적 후진성으로 지방의 발전 혹은 회생을 오히려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선거가 있다지만 본질은 뒤로 숨고 온갖 포퓰리즘과 생채기 내기가 극성을 부린다. 지구촌의 제대로 된 나라들은 정치권이 거칠게 싸우더라도 경제 살리기라는 공통 과제에는 이념이나 색깔을 배제하고 한 목소리를 낸다.
나라 밖에선 K-시리즈 광풍이 거세다. 그런데 한때 제조 강국으로 명성을 날리던 K-제조업의 위상은 쪼그라들고 있다. 중국의 공세에 백기를 들고 당장 항복하기엔 가진 인프라가 너무 아깝다. 제조 인프라를 재정비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중국의 물량 공세에 주저앉기보다 소프트웨어 기술을 접목하여 세계의 고객들에게 어필이 가능한 팔릴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역 특색에 맞게 제조업이나 소프트웨어 혹은 관광·농업을 특화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한국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자극하는 이유는 고유의 맛이 아니라 셰프들에 의한 재해석 혹은 재창출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일본은 관광객이 대도시뿐만 지방에도 넘쳐날까? 지방에 관광 자원이 넘쳐나고 해외에 항공노선이 연결되는 등 대문이 활짝 열려있다. 그것이 바로 글로컬리제이션이다. 고칠 것이 한둘이 아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