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저성장이 아니라 무성장과 역성장의 시대다>
우리나라가 저성장시대에 돌입했다는 우려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왔다. 언론 자료를 보면 ‘저성장’을 우려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초반이다. 10%대 이상 초고속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 후반의 3저 호황이 끝나면서 닥친 1992년의 ‘총체적 위기’가 아마도 그 시발점일지도 모른다. 그 당시 민주화 혁명의 결과로 대두된 노동조합의 압력과 매년 두 자리 숫자가 넘는 임금상승률 때문에 경제계의 위기의식이 더욱 확산되었을 수가 있다. 그러나 1992년 실질성장률은 6.4%였다. 이런 고속성장을 두고 저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2009년 이후 실질성장률이 3%대에 고착되던 2010년대 중반 이후 저성장을 우려하는 담론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30여 년 성장률 추이를 보면 0%대 성장률이나 마이너스 성장률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은 분명하다. 특히 코로나 위기 이후에는 성장률이 1%를 넘지 못하면서 일본이 1992년부터 2024년까지 32년 동안 0%~2% 성장률 구간에 갇히면서 그 사이에 일곱 번이나 역성장했듯이, 우리나라도 단순한 성장률 하락이 일어나는 저성장이 고착화되었다고 진단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저성장이 아니라 무성장, 나아가서 역성장을 걱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무성장과 역성장의 원인은 민간부문의 성장 동력 하락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나타난 가장 독특한 특징은 민간부문의 성장기여도가 꾸준히 쇠퇴했다는 점이다. 아래 [그림.1]에서 보듯이 수십조원, 나아가 수백조원의 엄청난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정부부문의 성장기여도는 큰 변화가 없는 가운데 민간부문의 기여도는 지속적으로 하락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정부부문의 실질성장률에서 기여도는 지난 30여 년 동안 1% 포인트 내외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민간부문의 성장률 기여도는 9%대에서 0%대로 추락했다. 예컨대 1995년에는 실질성장률 9.7%에서 민간부문 기여도는 8.7%였지만 2024년에는 실질성장률 2.4% 중에서 민간부문의 기여도는 1.5%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지난 30여 년 동안 성장률이 떨어진 근본 원인은 성장률에서 8% 포인트 이상을 기여하던 민간부문의 성장기여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최근에는 1% 기여하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성장률을 올리려면 민간부문의 성장기여도를 올려야 하며 정부부문에서 성장기여도를 올리는 것은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속적이지 않다.
<민간부문 중에서도 내수의 기여도가 너무 낮다>
민간부문 성장은 내수와 순수출에서 나오는데 순수출보다는 내수부문의 성장기여도 추락이 저성장의 가장 두드러진 원인이다.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지난 25년 동안 0%~1%대에서 크게 변화가 없는 가운데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2000년대 초 8%~9%에서 2023년~2024년 사이에는 1%대로 하락했다. 수출이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순수출의 경제성장 효과가 미약한 것은 수입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는 경제 구조적으로 수출이 늘어날수록 수입도 같이 늘어나기 때문에 수입의 증가로 인한 경제성장 상쇄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 내수부문의 성장은 소비부문과 투자부문에서 나오는데 2022년 이후 2024년까지 3년 동안 연속으로 투자부문에서는 역성장이 일어나면서 성장률을 오히려 갉아먹었다. 투자부문에서 역성장이 일어났다는 말은 실질 투자 규모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말이다. 특히 건설부문의 투자에서는 2022년과 2024년에 경제성장률을 0.5%p나 갉아 먹었다. 설비투자는 건설투자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2022년과 2023년 경제성장 기여도는 각각 0.0%p였고 2024년도 0.2%p에 불과했다.
<저성장에 대해 제시된 대책들>
우리나라의 무성장 혹은 역성장에 대한 대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해답으로는 (1) 기술 혁신 (2) 생산인구 확대 (3) 노동 생산성 증대 (4) 정부의 친기업 정책 확대를 꼽을 수 있다.
경제 성장을 결정짓는 두 가지 요소인 ‘노동’과 ‘자본’에서 현재로는 노동이나 자본 투입을 늘리기 힘들다. 저출산 고령화와 근로 시간 단축으로 노동 공급 자체가 줄어들고 있고 글로벌 경쟁력 둔화와 해외투자 확대로 말미암아 자본 투입도 빠르게 위축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면 노동이나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 투입이 늘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오르고 성장률이 올라갈 수 있다. 많은 전문가와 정부 관리들이 AI분야나 국가 첨단산업 분야의 기술 혁신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알고리즘·컴퓨팅파워·데이터 등 인공지능 전환시대의 필요한 인프라 투자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혁신을 통한 성장성 회복에는 간과할 수 없는 전제조건들이 있다. 첫째는 정부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이 극히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문성도 매우 결핍되어서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지원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기술 혁신에는 많은 불확실성과 위험성이 따른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기술 혁신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민간이 주도적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기술 혁신을 이끌어 가야 한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기술 혁신 생태계가 자연발생적으로 자리 잡은 미국 선례를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미국식 혁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 행정부와 입법부를 아우르는 국가적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제도와 법체계를 주도적이고 혁신적으로 파괴하면 되는 일이다. 국가가 기술 혁신의 알파와 오메가를 주무르려고 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기술 혁신은 안 이루어진다.
생산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대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출산을 늘리자는
주장도 있지만 가능한지도 불투명하고, 또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정년 연장이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높이거나 외국인 활용 범위를 넓히자는 방안도 제시되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사회적인 과제들이 많이 쌓여있는 방안들이다. 부족한 노동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경직된 노동 시장을 유연화시켜서 노동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나 산업별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률적인 근로 시간, 경직적이고 비자발적으로 결정되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줄이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척이 미미한 것은 이해관계가 얽힌 집단의 반대와 저항 때문이다.
결국 장기저성장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확대하는 길 밖에 없다. 기술 혁신이 민간 기업 주도로 진행되기 위해서도 정부의 정책이 반드시 친기업 정책으로 받쳐 줘야 한다. 그러나 친기업 정책이 법인세 인하와 같이 기업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첨단 산업 규제 수준이 경쟁국보다 과도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기업이 53.7%로 절반이 넘는다. 규제를 이행한다면 부담 된다는 기업이 전체의 72.9%나 된다 이런 것들을 확실하게 제거해 주는 것이 친기업 정책이다.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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