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소감은 정말 평온합니다. 왜 이렇게 평온할까 생각해보면,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 들어서인 것 같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런던영화제를 거치며 많은 관객들을 만났고 그 반응을 충분히 느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에요. 그 다음부터 일어나는 일은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락되면 허락되는 것이고, 때가 아니면 그 또한 때가 아닌 것이겠죠."
하정우는 개그맨 강성범이 대본에 참여했다며 오랜 시간 도움 받아왔다고 말했다.
"대학교 선배이자 친한 형입니다. '롤러코스터' 때부터 함께했죠. 군 복무 시절 형이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던 시기였는데 그때도 아이디어 회의를 자주 했습니다.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시나리오 작업 때도 늘 자문을 구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사이예요. 개그맨들은 천재적이거든요. 평생을 업으로 삼는 분들이기 때문에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 있어요.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코미디언 엄지윤, 이창호, 곽범 씨를 불러 리딩을 했고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로비' 이후에는 더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고, 처음으로 코미디언들을 초대해 의견을 구했어요."
하정우는 '말 맛'이 살아있는 대사의 완성도를 위해 대사의 완성도를 위해 '리딩 배우'를 따로 뽑는 방식도 도입했다고 말했다.
"오디션을 통해 현수·정아·수경·김선생 역의 리딩 배우를 뽑았어요. 아침 8시부터 이 배우들과 먼저 리딩을 하죠. 말이 잘 흘러가는지, 단어가 재밌는지, 전달되는지 귀로 확인하면서 수정합니다. 이하늬 씨가 스케줄이 안 되는 날이면 리딩 배우들이 대신 맞춰주고 메인 배우들이 들어오는 날에는 다시 조정하면서 시나리오를 다듬어요."
한정된 공간에서 주고 받는 대화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야하는 만큼 '대사'는 매우 중요했다고. 현장에서는 대사 수정이 끝까지 이어졌다는 부연이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대사를 계속 손봤어요. 사실 저는 애드리브를 좋아하지 않아요. 약속한 대사를 100% 지키는 걸 선호하죠. 효진 씨만 예외였어요. 효진 씨는 야생동물 같아서, 즉흥적인 감각이 더 사실적이고 매력적이거든요. 효진 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속한 대로 했습니다."
공간의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카메라가 비현실적으로 가버리면 연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아파트처럼 로케이션을 구성해 카메라를 세팅했습니다. 그 때문에 촬영 전에 동선을 짤 수밖에 없었고, 그 흐름에 맞춰 대사도 조정했습니다."
하정우는 단순한 코미디 장르가 아닌 깊은 울림을 주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윗집 사람들'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겉으로 보기엔 이 작품이 '섹스 코미디'나 '말장난 코미디'처럼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원작 '센티멘털'을 봤을 때 예상치 못한 감동이 있었거든요? 잘 아는 감정이었고 친숙했는데, 우리가 잊고 있던 부분이더라고요. 그게 소중하고 귀중한데 왜 놓치고 살았을까? 그 감정이 강하게 닿아서 연출적으로도 그런 부분을 강조하려고 한 거죠."
그는 부부의 갈라진 관계를 되돌리는 '작은 깨달음'의 순간을 이번 영화의 핵심으로 꼽았다.
"둘이 이혼 상담을 하러 가고 마지막으로 '안아보세요'라고 하잖아요. 각방을 쓰던 사람들이 포옹하는 게 얼마나 불편하고 어색한지 떠올렸습니다. 자연스러워야 할 사람들이 이상한 터칭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 순간 효진 씨의 흐느낌을 통해 '무뎌진 감정이 깨어나는 장면'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게 영화의 중요한 맥인 것 같습니다."
더 많은 관객이 보게끔 만들기 위해 대사 수위를 낮출 수도 있었겠지만, 하정우는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다며 이 작품이 꼭 지켜야할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사 수위를 타협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작·투자사가 제 의견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15세 등급을 받아도 해결 될 문제가 아니라고 봤어요. 오히려 등급을 위해 대사 수위를 낮추면 리액션의 재미가 반감된다고 본거죠. 상황의 강도보다 그 상황에 놓인 우리와 닮은 인물들의 반응이 재밌는 것이니까요."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는 일이 쉽지 않았다는 솔직한 고백도 이어졌다.
"이번엔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야외촬영이라도 있으면 숨 쉴 틈이 있는데, 이번엔 대부분 실내에서 조명 세팅이 복잡했거든요. 호흡을 맞추다 보면 배우들이 제보다 반 발자국 빨리 가주는 부분도 있고요. 다음 연출작에서는 비중 낮은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현장에서 연출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이루는 핵심 태도는 '흥행을 목표로 하지 않음'이었다고 말했다.
"연출자가 이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가가 중요합니다. 흥행 때문에 연출을 한다면 굳이 제가 할 필요가 없겠죠. 저는 이 작품이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몇 명이 보든, 누군가는 이 영화를 재밌게 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정우는 이 작품이 전작들에 비해 욕심을 덜고, 힘을 뺀 결과물이라며 나름대로 얻은 성과들을 언급했다.
"전작들을 보면 보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요. 그러다 보니 엉킨 부분도 많았고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죠. 이번 작품에서는 그런 과욕을 내려놓았습니다. 배우들을 더 신뢰했고, 맡겼어요."
그는 감독으로서 세상의 '아이러니'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영화에 담고 싶다며 자신만의 작품 철학에 관해 말했다.
"저는 아이러니를 좋아해요. 인간은 과연 변할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차가웠던 관계가 어떻게 윗집 사람의 제안 한 번으로 깨달음을 얻을까. 그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흥미롭습니다. 일상의 작은 자극이 감정에 균열을 내고 생각을 바꾸는 경험들이요. 그런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