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기술과 빅테크 자본 결합 현실화...JV팹 막 오른다

  • 금산분리·지주사 규제 완화...반도체 합작 회사 길 열어

  • 대규모 팹 확충에 수백조원, 리스크 분산 의의

  • HBM 필요한 빅테크, 입도선매로 한국 메모리 확보

사진아주경제DB
[사진=아주경제DB]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부담을 기업 단독으로 감당하기는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의 분석이다.

11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가 재계 숙원이던 금산분리와 지주사 증손회사 관련 규제 완화를 시사하면서 국내에서 JV팹(Joint Venture Fab)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JV팹은 두 개 이상 기업이 합작투자를 통해 금융리스업 계열사를 만든 후 이 회사가 만든 반도체 공장을 모회사에 임차하는 방식이다.

인텔·아폴로자산운용, 키옥시아·샌디스크 등 미·일에서 보편화한 JV팹이 국내에서 실현되기 어려웠던 건 금산분리·지주사 규제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금융리스업 자회사를 둘 수 없고, SK그룹 지주사 SK㈜의 손자회사인 SK하이닉스는 합작회사와 금융리스업 자회사를 설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기획재정부 업무보고를 통해 지주사 규제가 풀린 데 이어, 다음주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금산분리 완화의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AI 시장 급성장으로 후방 산업인 반도체도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진입하면서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대규모 팹 증설이 시급해졌다. 다만 개별 기업이 수백조원에 이르는 투자비를 감당하는 건 리스크가 크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첨단 팹 하나를 짓는 데 20조원가량이 든다"며 "아무리 돈을 벌어도 번 돈보다 더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SK그룹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만 60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리스크 분산을 위한 대안이 JV팹이다. 반도체 공급자와 수요자가 5대 5로 비용을 투자해 팹을 구축한 후 해당 팹에서 만든 반도체의 50~100%를 수요자에 우선 공급한다. 추후 불황이 와도 팹 운영에 문제가 없도록 수요자가 일정량의 반도체를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약정도 건다.

국내 JV팹의 서막은 소프트뱅크·오라클·아랍에미리트(UAE) 국부펀드 등을 등에 업은 오픈AI가 열었다. 경쟁사의 생성 AI와 AGI(일반인공지능) 개발을 막기 위해 지난 10월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부터 웨이퍼 기준 월 90만장의 메모리를 받는 '입도선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빅테크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과 접촉해 JV팹 계약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체 개발한 AI칩 텐서처리장치(TPU)를 외부에 판매하기 위해 최신 고대역폭메모리(HBM) 확보가 절실한 구글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규제가 풀리면서 빅테크와 월가의 막대한 자금 중 일부가 JV팹 형태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흘러들 것으로 기대한다. 모건스탠리 등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와 월가 투자은행들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올해부터 2028년까지 2조9000억 달러(약 4300조원)를 투자할 전망이다. 

범진욱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의 핵심 요구는 규제를 완화해 글로벌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었다"며 "정부가 화답하고 나선 만큼 글로벌 투자 유치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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