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낙인 26대 서울대 총장]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으로 온 국민은 ‘멘붕상태’에 빠졌다. 세계 10위 아니 세계 7위 경제대국에서 군대를 동원한 국가긴급권 발동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비상등은 이미 켜진 바 있다. 지금은 국무총리가 된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의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구상하고 있다”는 발설에 사람들은 오히려 김 의원을 별나라에서 온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였다. 아무도 계엄을 믿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민주공화국을 뿌리내리기 위하여 온 국민은 그야말로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19세기 말 세기적 소용돌이 속에서 초강대국들은 산업혁명으로 이룩한 기술과 부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적 세계경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격변의 세계사가 전개되는 와중에 우리의 선조들은 쇄국정책에 매몰되어 급기야 국권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이웃한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서양문물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개혁개방에 성공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위대한 선조들의 각고 어린 노력 끝에 맞이한 광복은 민주공화국의 토대를 채 갖추기도 전에 전쟁의 참화에 휩쓸렸다. 그 와중에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보위에만 급급하였다. 그럼에도 신생독립국가의 국가적 기초(nation-building)를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산업화를 달성하였다.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단기에 이룩한 산업화 위에 민주공화국 건설을 향한 국민적 열망과 저력은 마침내 87년 체제를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1948년 제헌헌법 이래 1987년까지 9개의 헌법이 명멸해 갔다. 그만큼 헌정은 파행과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87년 체제는 40년을 향하여 달리고 있다. 9개의 헌법이 존속한 기간보다 1개 헌법의 존속기간이 더 길어지는 헌법의 안정을 구가한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따라 대통령이 파면되기 이전에 현직 대통령에 대하여 검찰의 청구에 의하여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이를 결단코 가벼이 치부해서는 아니 된다. 구속영장 집행과정에서 현직 대통령 쪽의 완강한 저항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일회성·단발성 진통에 불과하다. 결국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되고, 새 대통령을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2022년 대통령 취임사에서부터 화려하게 수놓은 ‘자유’ 상찬은 계엄으로 종언을 고하였다. 더구나 “자유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계엄이라는 형용모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모의와 발령과정에서 민주헌정을 수호하기 위한 견제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는 긴 아쉬움과 여한을 남긴다. 상명하복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군대조직은 그렇다고 치자. 국내외에서 최정상급의 민주주의 교육과 훈련을 받은 대한민국 최고의 에이스들이 총집결한 곳이 국무회의다. 그런데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회의 구성원들이 대통령의 포악한 권한 행사에 전혀 견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점은 길이길이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통탄할 일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령 3시간 만에 국회가 해제를 요구한 것 또한 해외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 어렵다. 국민적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대응이 함께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비상계엄의 실패는 어느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승전보이다. 무엇보다 탄핵과 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찬탄과 반탄의 혼돈 속에서도 탄핵인용과 대선결과를 겸허히 수용한 국민들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화국 국민”임을 분명히 각인시켜 주었다. 선결제된 커피는 공화국 시민의 ‘공동선’(common good)으로 공유된다.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으로 여대야소의 상황에서 정부여당은 안정을 되찾았다. 새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다. 국회의사당 외벽에는 헌법 제1조 제2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휘장으로 둘러친다. 반헌법적이고 반국가적인 비상계엄은 응징되어야 마땅하다. 그러기에 비상계엄 세력에 대한 엄중한 법적 조치가 진행 중이다. 3특검에 더하여 관봉 특검까지 사상 유례 없는 4개의 특검이 동시에 가동된다. 계엄·김건희·채해병 특검은 법정 연장기간까지 다 마치고 이제 종착역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사상 처음으로 직전 대통령 부부가 함께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다. 초췌한 모습으로 피고인석에서 항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권력무상과 화무십일홍”을 실감케 한다. 입헌적 국민주권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남용한 처참한 후과다. 이 와중에 부하였던 군경 관계자들과 법정에서 말다툼을 벌이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언행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선조들이 피땀으로 쌓아올린 대한민국이 비상계엄으로 전 세계의 토픽 창에 등장하는 조롱거리를 자초하였다.
그런데 정작 집권세력은 반년이 넘도록 ‘국민주권’의 이름으로 내란세력 척결에만 매몰된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의 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다. 3특검법은 여야합의가 아니라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였다. 그래도 국정문란 사안이 워낙 중차대하기에 국민들도 수긍하였다. 하지만 3특검의 행태는 국민적 관심과 성원으로부터 멀어진다. 3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법원으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내란특검은 9건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겨우 3건 영장이 발부되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만 영장이 발부되었다. 한덕수 전 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장관(2번), 추경호 전 원내대표, 황교안 전 총리에 대한 영장은 줄줄이 기각되었다. 순직해병 특검은 10건의 청구에서 임성근 전 1사단장을 제외하고 전부 기각되는 초라한 결과다. 물론 영장이 기각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무죄는 아니지만, 범죄혐의에 대한 충분한 소명이 이루어지지 않아 신병확보에 실패함으로써 향후 행보에도 지장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김건희 특검은 별건수사로 내란세력에 부화뇌동한 자를 색출하여 구속하고 심지어 국토교통부 공무원은 사안과 무관한 뇌물죄로 구속했다. 수사를 받던 양평군청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은 특검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다. 그런데 정작 집권여당 인사들은 불문에 부쳤다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균형을 상실한 자의적 법집행은 그에 상응하는 지탄을 받기 마련이다. 권력 남용을 응징하기 위한 특검이 오히려 권력을 남용한 참혹한 결과다.
당정대 일체가 된 집권세력의 사법부에 대한 공격의 수위는 근대입헌주의 이래 쌓아올린 입법·행정·사법의 3권분립이라는 권력분립의 기본 틀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대법원장을 비롯하여 법관 개개인에 대한 과도한 공격은 사법권의 독립에서 핵심을 이루는 법관의 인적 독립에 근본적인 위협을 초래한다. 내란특별재판부는 혁명적인 초헌법적 상황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비록 상처투성이인 한국헌정사이지만 쿠데타와 헌정파괴의 와중에도 특별재판부 설치에 관한 한 헌법적 근거를 두었다. 바로 그런 점에서 헌법이 아니라 법률로 특별재판부를 설치하려는 발상은 그 자체가 위헌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정부여당은 사법부를 몰아치는 와중에 ‘법왜곡죄’를 들고 나온다(박찬대 의원 대표발의). “법관과 검사가 증거 조작, 사실관계 왜곡, 법령의 부당 적용, 공소권 남용 등을 통해 사법정의에 반하는 수사·기소나 판결을 하는 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고자 한다. 하지만 이는 판검사를 옥죄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내포한다.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 ‘사법방해죄’ 입법을 시도(박수영 의원 대표발의)한 것도 부적절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법의 정상적 작동을 훼손하는 법과 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법왜곡죄나 사법방해죄는 충분한 공론 과정을 거쳐서 정권이 바뀌어도 개정되지 않도록 반드시 여야 합의와 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결국 집권하자마자 작동한 4개의 특검은 이제 부메랑(boomerang)으로 되돌아온다. 정부여당이 3특검에 이어 종합특검을 고려하는 시점에, 김건희 특검의 왜곡된 법집행은 야당으로부터 특검도입 공격을 받는다. 현직 장관이 사퇴하고 또 다른 현직 장관 및 국가정보원장과 같은 정부의 최고위인사가 거명되는 통일교 문제는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조차 보인다. 사법개혁·검찰개혁을 화두로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격하시키고, ‘검수완박’이란 이름하에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법률이 내년 10월부터 시행된다. 그런데 정작 특검과 공수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향유한다. 이와 같은 예외적인 기구는 OECD국가에서 그 예를 찾기가 어렵다. 논란 끝에 어렵사리 설치한 공수처도 공수처장이 피소되어 수사선상에 오른다.
정치적 혼란의 와중에 노골적으로 드러난 법률가들의 법왜곡(法歪曲)과 곡학아세(曲學阿世)는 금도를 넘어선다.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시정잡배에게나 통할 법한 ‘내로남불’이 법률가들의 법집행과 법적용 과정에서 만천하에 드러난다. 똑같은 검찰인데 윤석열 검찰은 윤석열 석방결정에 대한 항고포기를, 이재명 검찰은 대장동 판결에 대한 항소포기를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민중기 특검은 똑같은 사안에서 야당의원은 별건수사로 구속하고, 정부여당 고위인사는 별건이라는 이유로 수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제 공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 넘어갔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사건으로 내상을 입은 국수본이 이번에야말로 명예를 회복할 때이다. 이번 사건이 향후 경찰의 수사권 독립에 대한 중요한 국민적 지렛대가 될 터이다. 박성주 수사본부장은 자신과 경찰의 명운을 걸고 공명정대한 수사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적 정당성을 확보한 정부와 여당 두 축이 국정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옥죄는 비난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여당의 내란몰이나, ‘윤 어게인’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야당도 매 한가지다. 이제 과거로부터 벗어나서 미래로 향한 국정운영을 위해 여야가 함께해야 한다. 윤석열 정권이 그토록 강조하던 ‘자유’가 허망하게 종말을 고하였다.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국민주권’은 만백성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말한다. 그런데 정작 주인은 보이지 않고 ‘민주’만 난무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정치적 기본원리이다. 하지만 자유 따로 민주 따로 작동하는 한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없다. 자유와 민주의 튼실한 결합 위에 함께하는 공동체 건설을 위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의 재정립은 이 시대의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과제다.
필자 주요 이력
▷파리2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한국공법학회 회장(2005~2007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2009년 1월~2012년 12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2010~2013년) ▷동아시아연구중심대학협의회 의장 ▷제26대 서울대 총장(2014년 7월~2018년 7월)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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