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은 권력자는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정확히 짚어냈다. 권력자의 횡포와 시스템의 부패, 겹겹이 쌓인 약자의 복수는 결국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폭발하며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2025년 12월31일 중국 대륙에서 개봉한 범죄 스릴러 영화 ‘익살(匿殺, The Fire Raven)’에 대한 한 중국 누리꾼의 평이다. '정의의 복수'가 통쾌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악(惡)을 처단하는 악(惡)은 과연 정의인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검은 우비에 까마귀 가면을 쓴 살인마가 전면에 등장하는 포스터부터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영화는 개봉 이틀 만에 박스오피스 1억 위안(약 207억원)을 돌파하며 연말연시 중국 극장가를 강타했다.
말레이시아계 화교인 커원리(柯汶利)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그는 영화 ‘오살(誤殺)’, ‘묵살(默殺)’에 이어 ‘익살’까지 연달아 흥행시키며 범죄 살인 영화 장르의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펑위창(彭昱暢)과 장쥔닝(張鈞甯)이 주연을 맡았고, 황샤오밍(黃曉明)이 특별 출연했다.
영화는 ‘가장 정의로운 영화’라는 다소 도발적인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무대는 태평양의 외딴 섬 ‘두마’. 15년간 묻혀 있던 비극적인 사건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중년 여성이 까마귀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잔혹하게 살해된다. 이 사건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15년 전 잔인하게 살해된 여고생 샤오디의 죽음과 연결된 치밀하게 계획된 복수의 시작이다. 당시 샤오디는 각계각층의 권력과 부패로 얽힌 집단에 의해 성폭행과 살해를 당했지만, 사건은 은폐됐고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그로부터 15년 후, 사건의 배후에 있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까마귀 가면을 쓴 살인마의 손에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과거 사건의 목격자인 팡톈양(펑위창 분)과 그의 누나이자 경찰인 팡정난(장쥔닝 분)이 연쇄 살인 사건 수사에 나서고, 이 살인이 단순한 복수를 넘어 ‘정의의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권력과 돈, 욕망으로 얽힌 검은 네트워크 뒤에 숨겨진 인신매매와 자금세탁 등 구조적 범죄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특히 커원리 감독은 가상의 도시 ‘두마’를 지상과 지하로 분리된 계급 사회로 설정해 극심한 빈부격차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어둡고 축축한 지하도시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서민층과,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고층빌딩 속에서 사치스러운 삶을 누리는 상류층의 대비는 노골적이다.
“경찰이 하는 일이 뭔지 알아? 진실을 포장하는 게 우리 일이야”,
“어떤 사건들은 해결이 불가능한 게 아니라, 애초에 손댈 수가 없어.”
영화 속 대사는 권력과 돈의 결탁 속에서 법과 정의가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세계에서 하류층이 상류층의 폭력적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수단은 결국 또 다른 폭력 뿐이다.
영화는 개인의 원한을 넘어, ‘익명’이라는 가면 아래 하류층이 상류층을 향해 가하는 집단적 숙청을 그린다.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자경단식 심판은 목이 베이고 사지가 절단되는 장면까지 피비린내 나게 묘사된다.
한 영화 블로거는 이 작품의 흥행 요인으로 “선한 사람이 악인의 방식을 빌려 악인을 제거하는 데서 오는 통쾌함,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연속, 그리고 겹겹이 쌓인 복선과 인물들의 반전”을 꼽았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영화 말미다. ‘악에 악으로 맞선’ 살인자는 끝내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다. 대신 화면에는 ‘이 방법은 용납될 수 없다’는 자막만이 뜬다. 체제 내 정의 실현과 법치 회복을 강조해온 기존 중국 영화와 결을 달리하는 결말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중국 영화 검열 기준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화 익살이 상투적인 체제 예찬론적 결말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신선하지만, 문제 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보다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악을 벌하기 위해 악을 선택하는 것이 정의가 될 수 있는지, 정의라는 이름의 복수가 또 다른 폭력을 낳는 것은 아닌 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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