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건 이후 연방정부의 강경한 법 집행은 질서 회복이라는 명분과 함께 강한 정치적 신호로 작동했다. 이에 맞서 주정부와 지역사회의 반발 역시 행정적 이의 제기를 넘어 정체성의 선언으로 확대됐다. 양측은 모두 후퇴할 수 없는 구도에 들어섰고, 정책은 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지지층 결집을 위한 상징으로 고정됐다. 타협은 곧 패배로 간주됐고, 갈등은 해결이 아닌 지속을 전제로 구조화됐다.
이 과정에서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시민의 위치다. 희생은 애도의 대상이 아니라 정치적 명분으로 전환됐고, 죽음은 냉정한 원인 규명과 제도 개선의 출발점이 되지 못했다. 연방과 주정부의 대립은 시민의 안전을 둘러싼 정책 논의를 밀어내고, 감정과 진영 논리를 자극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상징정치는 사건을 단순화하고 분노를 증폭시키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시민을 보호해야 할 정치의 책임을 약화시킨다.
특히 이러한 상징화는 선거 국면과 결합할 때 위험성이 배가된다. 정책 실패나 행정 과잉의 책임은 흐려지고, 강경한 언어와 과시적 대응이 정치적 성과로 보상받는다. 문제 해결 능력보다 ‘누가 더 물러서지 않는가’가 평가 기준이 되는 순간, 시민의 안전과 사회의 안정성은 뒷전으로 밀린다.
이 문제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지역 현안과 사회적 갈등이 정책 논의가 아닌 정치적 상징으로 소비될 유혹은 커진다. 특정 사건이나 사고가 진영 대결의 도구로 전환되는 순간, 문제 해결은 멈추고 갈등만 남는다. 시민의 삶과 안전은 정치적 선명함을 위한 배경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정치는 상징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민의 피해를 줄이고 갈등의 비용을 관리하며 제도를 작동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미네소타의 사례가 갈등의 분수령으로 남는다면, 그것은 누가 이겼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라 상징정치가 시민의 희생을 어떻게 잠식하는지를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 역시 선거를 앞두고 상징의 유혹에 머무르지 말고, 상식과 책임의 정치로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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