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소셜 미디어 웨이보에서 또 “한국이 우리 문화를 훔쳤다”는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 불매를 촉구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여론은 몇 시간 만에 격앙됐다.
흥미로운 점은 그 글을 공유한 일부 계정의 프로필이었다. 분노의 언어를 쏟아내던 계정들 중 상당수는 K팝 아이돌 사진을 프로필로 사용했다. 자신의 세련된 글로벌 취향을 향유하면서도,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순간에는 콘텐츠 소비자와 민족주의자라는 두 자아를 거침없이 분리하는 이 장면은 ‘리틀핑크(Little pink)’ 현상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리틀핑크, 중국어로 '샤오펀훙(小粉紅)'이라 불리는 이 집단의 뿌리는 역설적이게도 문화적 유연함에 있다. 2000년대 후반 핑크색 메인 화면을 가진 로맨스 플랫폼 '진장문학성(晉江文學城)'에서 활동하며 해외 서브컬처를 향유하던 여성 팬덤이 그 시초다.
닫힌 인터넷에서 형성된 감정과 정체성
중국 MZ세대의 특징을 이해하면 그 변화가 왜 일어났는지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들은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국가 위상 변화 속에서 '약한 중국'을 경험하지 못한 첫 세대다. 개인 정체성과 국가적 자부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외부의 비판을 개인적 모욕처럼 받아들이는 감정 구조가 강화되었다.
동시에 그들은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해외 플랫폼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폐쇄적 인터넷 환경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자신과 외부를 비교하는 기회가 제한되면 온라인 여론은 자국 플랫폼의 알고리즘에 의해 빠르게 편향된다. 웨이보·더우인·샤오훙수 등의 추천 알고리즘은 자부심·분노·경계심을 급속히 확산시키고, 유사한 감정을 가진 이용자들을 하나의 정서 공동체로 묶어낸다.
동경과 적대가 공존하는 감정 구조
'양가적 민족주의(ambivalent nationalism)'라는 개념은 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중국 MZ세대는 한국·일본·서구의 콘텐츠를 즐기며 글로벌 취향을 형성했지만, 미·중 경쟁과 동아시아 갈등을 일상적으로 접하며 성장했다. 동경과 경계가 공존하는 이 감정 구조는 특정 사건을 만나 순간적으로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여론을 만들어낸다.
이 양가성은 '위선'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이다. 중국 MZ세대에게 한국은 "문화적으로 동경하지만 정치적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개인의 취향과 국가 정체성이 충돌할 때, 온라인 생태계는 후자를 선택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한한령'이 지속되던 시기에도 중국에서는 '사랑의 불시착',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한국 드라마가 비공식 경로를 통해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판정 논란이 발생하자마자 비난 여론이 단숨에 확산된 것은 양가적 감정이 자극을 만나 빠르게 재정렬된 대표적 예이다.
유동하는 감정 공동체
그렇다면 리틀핑크는 중국 MZ세대 전체를 대표하는가? 그렇지 않다. 리틀핑크는 특정 조직이나 고정된 구성원을 가진 집단이 아니다. 해외 연구자들은 이 현상을 '유동적 감정 공동체'로 규정한다. 외교 갈등이 촉발되면 수천, 수만명의 핵심 행동층이 먼저 움직이고, 이후 수백만 규모의 주변층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여론이 증폭되는 구조다.
중국 청년층 내부에는 글로벌 소비에 익숙하거나 정치적 갈등에 냉소적인 집단도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감정정치가 부상하는 순간, 이러한 다양한 목소리는 온라인 여론의 파동에 의해 쉽게 가려진다.
한국이 읽어야 할 신호는
우리는 이 현상을 단순한 민족주의로 환원하기보다 정치적 판단, 감정 구조, 온라인 생태계가 맞물린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리틀핑크를 일방적인 '반한 세력'으로 규정하는 대응은 실효성이 낮다. 1월 초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셀카를 찍으며 보여준 친밀감이 민간의 감정으로 전이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이때 필요한 것이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이유극강(以柔克剛)’의 태도다.
따라서 우리 문화 산업과 기업들은 감정적 맞대응 대신 '영향력 확대를 위한 실리적 현지화'에 집중해야 한다. ‘동경’의 영역이 유지되도록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되, 현지의 정서적 금기선을 건드리지 않는 세심한 리스크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
리틀핑크는 고정된 적이 아니라 유동하는 감정 공동체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한·중 관계의 방향 역시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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