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트] 북방 항로 시대, 해양 자산이 국가의 좌표를 만든다

  • - 강훈식 순방이 던진 북극 해양 질서의 질문

국가의 전략적 위상은 선언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산업의 체력과 기술의 깊이, 외교의 신뢰, 그리고 시대 질서의 변화를 읽는 통찰이 겹쳐질 때 비로소 한 나라의 위치가 달라진다. 지금 북극 해역과 북방 항로를 둘러싼 움직임이 빨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단순한 해상 운송로의 확대가 아니라, 21세기 해양 질서의 재편이다. 길이 열리면 물류가 늘고, 이해관계가 얽히며, 그 순간부터 바다는 경제의 통로이자 안보의 경계가 된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동부 스피츠베르겐 북극 해역에서 쇄빙 연구선 ‘크론프린스 호콘Kronprins Haakon’이 해빙 사이를 항해하고 있다사진AFP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의 동부 스피츠베르겐 북극 해역에서 쇄빙 연구선 ‘크론프린스 호콘(Kronprins Haakon)’이 해빙 사이를 항해하고 있다.[사진=AFP]


북극은 더 이상 지도 위의 빈 공간이 아니다. 해빙의 진전은 북극 해역을 현실적인 항로로 바꾸고 있으며, 수에즈 중심의 글로벌 물류 체계를 보완하거나 일부 대체할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혹한, 긴 항해 거리, 제한적인 구조 능력이라는 조건 속에서 이 항로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항만 확충이 아니다. 해양 감시, 구조 역량, 과학 관측, 그리고 질서 유지 능력이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여기서 해양 자산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진다. 

첫째는 쇄빙 능력이다. 북방 항로는 ‘갈 수 있는 배’가 아니라 ‘갈 수 있게 만드는 배’가 있어야 열린다. 쇄빙선은 단순한 특수선이 아니라 항로 개척의 기반 인프라다. 길을 내고, 위기 시 접근하며, 연구와 관측을 수행하고, 항로의 신뢰를 축적한다. 둘째는 수면 아래의 전력이다. 북극은 넓고, 춥고, 정보가 부족하다. 이 공간에서 해양 질서를 지탱하는 힘은 보이는 전력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속적 감시와 억제 능력이다. 잠수함은 더 이상 특정 국가의 전력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항로 안정성, 해양 통제 능력, 동맹 구조의 신뢰, 산업 기술 수준을 동시에 드러내는 전략 자산이며, 북방 항로 시대에는 질서 유지의 기반으로 기능한다.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강훈식 비서실장이 노르웨이 정부의 한국산 다연장 로켓 천무 구매 계약 체결을 알리며 북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확고히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이 1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를 만난 모습사진연합뉴스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강훈식 비서실장이 노르웨이 정부의 한국산 다연장 로켓 '천무' 구매 계약 체결을 알리며 "북유럽 진출의 교두보를 확고히 마련했다"고 말했다. 강 실장이 1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요나스 가르 스퇴르 노르웨이 총리를 만난 모습[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누가 독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함께 설계하느냐다. 북방 항로는 단일 국가가 열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이해관계가 중첩된 복합 공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캐나다, 러시아, 그린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등과 함께 항로 개척의 공동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 이 협력은 군사 계약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해양 관측, 기후 데이터, 빙해 항행 기술, 극지 환경 보호, 구조 체계, 해저 통신망 보호 등 과학기술과 공공 인프라가 결합될 때 신뢰가 만들어진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북극은 물류의 바다이면서 과학과 환경의 바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강점은 조선·방산 산업이 축적한 설계, 건조, 통합 역량이다. 이제 이 능력을 수출의 언어로만 말할 것이 아니라 질서의 언어로 확장해야 한다. 쇄빙선과 잠수함은 산업 품목을 넘어, 북방 항로의 안전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공공적 자산이다. 해양 자산 확대는 단순 국방비가 아니라 공급망 안정, 기후 리스크 대응, 국가 과학 경쟁력, 그리고 동맹 신뢰를 동시에 높이는 전략 투자다.

기본 원칙과 상식은 분명하다. 해양 질서는 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예측 가능성, 계약 이행, 환경 책임, 과학 협력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힘의 과시는 오래가지 않지만, 책임 있는 능력은 신뢰로 남는다. 쇄빙선으로 길을 내고, 잠수함으로 질서를 지키며, 과학으로 신뢰를 쌓는 길이 북방 항로 시대의 국가 전략이다. 바다 밑에서 움직이는 자산이 결국 수면 위의 국제 질서를 만든다.

이러한 국가 전략 차원에서 최근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의 캐나다·노르웨이 방문은 단순한 외교 일정이 아니라 북방 질서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넓히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평가할 수 있다. 해양 자산과 과학 협력을 연결하는 이러한 접근은 방향이 옳고, 시의적절하며, 미래 질서에 부합한다. 

북극의 문이 열리는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이런 발빠른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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