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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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의 침몰은 역사상 최대의 해상 사고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비극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게 아니었다. 항해 중 빙산 경고는 반복됐지만, 속도를 줄이거나 방향을 트는 선택이 끝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 배는 견고했고, 당장의 불편을 감수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위험은 인식됐지만 결정을 미루는 쪽이 더 합리적으로 여겨졌다. 타이타닉은 다가오는 위험을 알고서도 지금 해야 할 행동을 미루다 가라앉았다. 지금 한국 사회가 반복하고 있는 장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의 정책부터 그렇다. 연금은 이미 지속 가능성을 잃었다는 진단이 수년째 반복되지만, 개혁은 늘 ‘사회적 합의’라는 말 뒤로 밀린다. 모두가 문제라는 데 동의하지만, 어느 세대가 얼마를 더 부담할지에 대한 선택은 끝내 내려지지 않는다. 부동산 정책도 다르지 않다. 구조를 건드리기보다는 선거를 의식한 미세 조정이 반복되고, 세제는 손대지 못한 채 시장에 왜곡된 신호만 흘려보낸다. 재정 역시 제대로 쓰지도, 줄이지도 못한 채 시간을 끈다. 명확한 우선순위와 설명 대신, 부담을 미래로 넘기는 선택이 이어진다. 저출산은 이 회피의 논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가장 확실한 구조적 위기임에도, 부작용이 지금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금 해야 할 행동은 계속 뒤로 미뤄진다.

시장은 이런 침묵을 가장 먼저 감지한다. 자본은 정책의 설명보다 결단의 유무를 본다. 그래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본은 떠나는 쪽을 택한다. 그 결과는 환율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최근 원화 약세는 단순한 달러 강세의 반영이 아니다. 결정을 미루는 구조가 누적될수록, 시장은 그 사회의 미래를 먼저 할인한다.

기업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불확실성이 극심하던 시기에도 투자를 멈추지 않았고, 그 선택은 성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는 예외에 가깝다. 대다수 기업은 실적이 나쁘지 않아도 투자를 미루고 현금을 쌓는다. 개별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판단이지만, 모두가 동시에 관망자가 될 때 경제는 정체에 빠진다. 선택을 미루는 합리성은 결국 성장의 동력을 잠식한다.


사회의 이런 분위기는 개인으로 쉽게 전이된다. 의대 선호 현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꿈이나 사회 기여라는 거창한 구호는 옛말이 됐고, 소득과 지위가 선택의 기준이 됐다. 개인이 비난받을 선택은 아니다. 다만 그 합리성이 사회 전체에서 동시에 반복될 때, 도전은 사라지고 회피만 남는다. 전 국민의 부동산 선호 역시 같은 구조다. 손쉽게 자산을 불리고 이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반복되면서 경제의 활기는 소진된다.

개발도상국 시기 한국 사회의 질문은 분명했다.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3만 달러를 넘은 지금의 질문은 달라야 한다. 연금, 부동산, 재정, 저출산, 산업 전환이라는 여러 위험 앞에서 어떤 결단과 개혁으로 방향을 바꿀 것인지가 핵심이 돼야 한다. 타이타닉이 침몰한 이유는 다가오는 빙산의 존재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알면서도 항로를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장의 시대가 끝난 지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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