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명운을 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지만 만성적 인재난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목마른 기업이 우물 파듯 인력 육성·유치에 사활을 건 가운데 정부도 범국가적 차원의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평택, 이천 등지에서 공장 신설과 증설을 위해 투입했거나 투자를 계획 중인 자본은 총 1000조원가량이다. 삼성전자가 약 400조원, SK하이닉스가 약 600조원을 투자할 예정으로, 반도체 산업 역사상 유례 없는 규모다.
이처럼 막대한 설비투자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작 생산라인에 서거나 연구개발에 나설 반도체 산업 인력은 크게 부족한 상태다. 최근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보고서를 통해 2031년까지 반도체 전문인력이 약 5만4000명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수요·공급 불균형은 특히 설계·소자·공정 등 전문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김경수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은 "현행 대학 중심 교육만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현장의 요구를 따라가기 어렵다"며 "석사 학위 소지자조차 실제 현장에 투입되기까지 최소 2~3년의 추가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가에서도 반도체 인재 양성의 현실적 어려움이 지적된다. 정부가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고 정원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교수진과 실험·연구 인프라는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 현장과 연계된 실무형 교육을 수행할 전임 교수가 부족하다 보니 정원만 늘어난 채 양질의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결국 정부 정책이 양적 목표 채우기에 급급한 사이 대학 등 고등 교육기관이 교수 확보를 위한 인건비와 커리큘럼 운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기업들도 인력난 해소에 전사적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대학과의 다양한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중이다. 삼성전자는 성균관대·연세대 등과 함께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하며 졸업 후 채용을 연계하고, SK하이닉스는 고려대·한양대 등과 취업 연계형 반도체 학과 설립·운영을 통해 인재 확보에 나섰다. 산학 연계 연구소와 실습 프로그램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노력도 정부의 맞춤형 지원이 동반돼야 지속성과 효과를 담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는 전국 대학 및 대학원에 반도체 특화 트랙을 확대하고, 반도체 특화 대학원과 실무형 교육기관을 신설해 장기적으로 30만명 이상의 전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실질적으로 세밀한 지원책이 제시된 건 없다. 신규 인력 육성보다 기존 재직자 교육 위주로 예산이 집행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석사 이상의 고급 인력 배출이 부족하다는 점과 미국·중국으로의 핵심 인재 유출을 막을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기업 의견을 경청하며 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반도체 인재를 체계적으로 키워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과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정부의 전략적 개입과 지원이 시급하다는 조언이다.
범진욱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중국은 상당히 많은 인력이 반도체 연구·개발에 투입돼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차·포 떼고' 가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인력 구조가 너무 취약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반도체 산업이 전체 수출의 25%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정부가 인재 양성 등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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