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이 등골 브레이커”라는 말이 다시 공공연히 회자되는 현실은, 단순한 체감 물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의 공정성과 행정의 책무가 어디에서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음이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어떤 중학교는 재킷과 계절별 상·하의, 체육복까지 모두 구매할 경우 60만8000원이 든다고 한다. 또 다른 학교는 정복 대신 생활복 상의 2벌만 사도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호소가 나온다. ‘교복 한 벌’이 아니라 ‘패키지 강매에 가까운 구매 구조’가 가계의 목을 조르는 것이다.
더구나 교복은 사치재가 아니다. 의무교육의 사실상 필수재에 가깝다. 필수재가 ‘가격 협상력이 약한 소비자’를 상대로 과도한 이윤을 남기는 구조라면, 그것은 자유시장경제의 이름을 빌린 약탈이다.
교복 시장은 과거부터 담합·입찰 담합 논란이 반복돼 왔다. 실제로 공정거래 당국은 학교 주관 교복 공동구매 입찰 과정에서 특정 지역 판매업체들의 담합 행위를 제재한 사례를 최근에도 공개했다.
“시장에 맡기자”는 말은, 경쟁이 작동할 때만 유효하다. 경쟁을 가장 먼저 훼손하는 행위가 담합이라면, 담합을 끊어내는 일은 ‘시장 개입’이 아니라 ‘시장 복원’이다.
더구나 올해 초 교복 가격이 5~15%가량 인상됐다가, 여론과 부담을 의식해 전년 수준으로 되돌리는 방안이 협의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가 상승이 정말 불가피했다면, 왜 여론이 악화되자 가격이 ‘되돌아갈 수’ 있었나. 가격이란 결국 원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판매 전략과 판촉비, 유통 마진, 브랜드 프리미엄,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가 대체재를 찾기 어려운 구조’가 가격을 만든다. 교복이 대표적이다. 학교 지정, 지정업체, 특정 디자인, 일괄 구매. 이 네 가지가 결합하면 소비자는 흥정할 수 없고, 시장은 교섭력을 잃는다. 그 틈이 바로 폭리의 통로다.
여기에 “교복 수입” 문제가 겹치면 더 복잡해진다. 요즘 교복은 완제품이든 일부 공정이든 해외 생산·해외 봉제 활용이 거론된다. 업계는 “원단과 부자재는 국내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출처 논쟁이 아니라 투명성이다. 국내산이든 수입이든, ‘어떤 비용 구조로’ ‘어떤 마진 체계로’ 최종 가격이 결정되는지 공개되지 않으면, 시장은 신뢰를 잃는다. 특히 수입 원단·수입 공정이 포함된 교복이라면 더욱 그렇다. 수입 과정은 환율, 물류비, 관세, 통관 비용 등 변수가 많다는 이유로 “원가 공개가 어렵다”는 핑계가 나오기 쉽다. 그러나 변수가 많을수록 공개는 더 필요하다. 변수의 이름을 빌려 이윤을 숨기는 순간, 그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교복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용자가 지적했듯, 글로벌 국가를 자처하는 한국에서 수입·유통 단계의 과도한 마진 논란은 곳곳에서 반복된다. 특히 특정 농수산물·과일처럼 해외 산지 가격과 국내 소비자가 사이의 괴리가 큰 품목은 “중간상과 수입업자의 폭리”라는 의혹이 쉽게 붙는다.
여기서 정부의 역할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가격을 정해주는 것이 아니다. 첫째, 담합과 독점, 불공정거래를 감시·처벌하는 ‘경쟁의 경찰’ 역할이다. 둘째, 소비자가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정보의 심판’ 역할이다. 셋째, 취약계층과 필수재 영역에서 시장 실패가 발생할 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작동시키는 ‘사회적 조정자’ 역할이다.
교복은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필요한 영역이다. 필수재이고, 구매 시기가 특정돼 있으며(개학 전), 수요가 단기간에 폭발하고, 대체재가 제한되며, 학교·지역 단위로 시장이 쪼개져 담합 유인이 커진다. 따라서 처방도 ‘날카롭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첫째, 교복 가격의 ‘구성표’를 의무화해야 한다. 원단·부자재·봉제·물류·판매관리비·판촉비·마진이 어떤 비율로 붙는지, 최소한의 표준 양식으로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 “영업비밀”이라는 말로 소비자의 권리를 가릴 수는 없다. 필수재 시장에서 정보공개는 공공성의 일부다.
둘째, 학교 주관 구매(공동구매) 입찰을 ‘가격 경쟁’만으로 설계하지 말고, 담합 방지 장치를 정교하게 넣어야 한다. 동일권역 반복 낙찰, 들러리 입찰, 대리점 간 사전 합의 징후를 데이터로 포착하고 상시 점검해야 한다. 이미 입찰 담합 제재 사례가 반복되는 만큼, “적발되면 처벌” 수준을 넘어 “담합이 성립하기 어렵게 설계”하는 단계로 가야 한다.
셋째, ‘교복 수입’이 포함된 제품에 대해서는 원산지와 공정 정보를 더 명확히 표시하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가 “국산이라고 믿고” 프리미엄을 지불했다면, 그 프리미엄은 정직한 정보 위에서만 정당화된다. 업계가 주장하는 국내 조달·품질관리 체계가 사실이라면, 오히려 투명한 공개가 브랜드 신뢰를 강화할 것이다.
넷째, 경쟁을 키워야 한다. 교복 생산자 협동조합, 지역 기반 공동생산, 표준 디자인의 확대, 온라인 비교 견적 플랫폼 등은 ‘시장에 맡기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폭리의 구조’를 줄이는 제도적 장치가 될 수 있다. 이는 가격 통제가 아니라 경쟁 촉진이다. 정부는 직접 가격표를 쓰지 말고, 경쟁이 작동하는 운동장을 공정하게 고르면 된다.
시장경제는 가격을 존중한다. 하지만 시장경제는 동시에 ‘공정’을 존중한다. 공정이 사라진 가격은 시장의 언어가 아니라 권력의 신호다. 학생의 교복, 서민의 밥상, 생활 물가의 곳곳에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늘어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물가 단속이 아니다. 담합과 독점, 불투명한 마진을 해부해 공개하고, 경쟁을 복원해 ‘정상 가격’이 스스로 형성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교복 ‘등골 브레이커’ 논란은 그 출발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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