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은 문화 설명에 능숙한 나라였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 압축 성장이라는 굴곡진 현대사는 언제나 한국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배경 설명이었다. 이는 필요했고, 일정 부분 유효했다. 그러나 글로벌 문화 환경이 성숙 단계에 접어들면서, 설명 중심의 접근은 점차 힘을 잃고 있다. 세계는 더 이상 ‘왜 이런 문화가 나왔는지’를 묻기 전에, ‘이 문화의 주체가 신뢰할 만한지’를 먼저 판단한다.
BTS가 ‘아리랑’을 호출했을 때, 그들은 한국의 역사적 상처를 설명하지 않았다. 아리랑이 어떤 시대를 거쳐 왔는지, 어떤 민족적 의미를 지니는지 친절하게 안내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숨기지 않는 태도를 선택했다. 상처와 불안을 미화하지 않았고, 감정을 정리해 안전한 이야기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이 태도가 세계를 설득했다. 정확히는, 설득할 필요조차 없게 만들었다.
세계가 불편해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화가 불편해지는 순간은 대개 ‘주장’이 앞설 때다. “이것이 우리의 역사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라는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문화는 경계선을 만든다. 반면 태도는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태도는 드러날 뿐이고, 드러난 태도는 신뢰를 낳는다. BTS 이후 한국 문화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이 신뢰다.
이건희 컬렉션이 BTS 이후 중요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그 컬렉션은 한국 미술의 ‘위대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시대와 작가, 성공과 실험, 중심과 주변을 한 공간에 놓는다. 완성된 서사를 제시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한다. 이 태도는 “우리는 정답을 이미 알고 있다”는 자세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우리는 기록했고, 이제 다시 읽힐 준비가 돼 있다”는 선언에 가깝다.
세계는 이런 태도에 반응한다. 문화 강국의 조건은 더 이상 유구한 역사 그 자체가 아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성숙하게 다루는지가 기준이 된다. 일본 문화가 세계에서 오래 소비될 수 있었던 이유도, 프랑스 문화가 여전히 기준점으로 작동하는 이유도, 결국은 자기 전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설명보다 운영, 주장보다 관리, 감탄보다 신뢰다.
BTS 이후 한국은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이제 세계는 한국을 ‘신흥 문화 국가’로 보지 않는다. 하나의 기준으로 보기 시작했다. 기준이 된 문화는 더 많은 자유를 얻는 대신, 더 많은 책임을 요구받는다. 실수는 변명으로 넘어가지 않고, 태도는 곧바로 평가로 이어진다. 이 부담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가 다음 단계의 관건이다.
질문은 점점 더 분명해진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를 이해해 달라”는 위치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이렇게 한다”고 말할 준비가 돼 있는가. 역사와 전통은 설명의 재료가 아니라, 태도의 결과로 드러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BTS의 ‘아리랑’은 그 사실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증명했다.
세계는 한국의 역사를 시험지처럼 채점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사회가 자기 문화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꾸준히 관찰한다. 숨기지 않는가, 고정하지 않는가, 다음 세대에게 열어두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곧 K-헤리티지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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