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에 끝난 북한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적대적인 국가 대 국가간 관계로 정립하는 최종적인 중대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2023년 말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관계’가 “일시적인 전술적 조치가 아니라”, “국가와 인민의 현재와 미래의 안전을 굳건히 담보하기 위한 역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미국에 대해서는 “최강경 자세를 변함없는 대미정책 기조로 확고히 견지할 것”이라고 하면서도,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평화적 공존과 영원한 대결, 모든 것에 준비되어 있다며, 향후 북미관계는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북한의 대남·대미정책을 ‘통미적남(通美敵南’)이라고 하지만, 이란전쟁을 고려할 때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습하여 이란 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86) 등 지도부를 제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장거리 미사일과 핵무기로 무장한 이란 정권은 모든 미국인에게 끔찍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테러 군대를 양성하는 나라가 악의적 의지로 세계를 갈취하도록 허용하는 그런 무기를 보유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며 이번 공격의 정당성을 부각했다.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3월 1일)을 통해서 “미국의 패권적, 불량배적 속성으로부터 반드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논리적 귀결”이라고 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후안무치한 불량배적 행태를 가장 강력한 어조로 규탄한다”고 밝혔다.
2002년 1월 29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의회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래, 미국은 지속적으로 반테러 전쟁을 추진해왔다. 이라크 후세인 정권, 리비아 카다피 정권을 무너트리고, 지난해 전격적으로 이란의 핵심 핵시설 세 곳(포르도·나탄즈·이스파한)을 ‘정밀 공습’했다. 이후에도 이란이 보유한 농축우라늄을 해외로 반출하길 거부하는 등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전쟁의 수렁에 빠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란 지도부 제거를 감행했다. 미국과 중동 국가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이란 핵개발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제 불가능한 위협’으로 진전된 북한 핵개발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이란 최고지도자 제거를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가 사망함으로써 북한 김정은도 긴장할 수밖에 없게 됐다. 1월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체포·구금한 지 두 달 만에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FAFO(까불면 죽는다는 속어)’ 메시지가 빈말이 아님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확산 방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임으로써 핵을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는 군사력을 동원하여 최고지도자를 제거하면서, 북한과는 핵보유를 인정하고 관계 맺기를 시도할 경우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4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장담하기 어렵다.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한 데 이어 최고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군사옵션이 북핵해법의 마지막 수단으로 검토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미국이 한때 북한 핵시설에 공습을 검토한 적이 있다.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가공하여 핵무기를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외과수술식 도려내기·surgical strike)’을 검토했다. 당시 ‘도려내기 타격’을 검토했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그 공격으로 인해 북한이 남한을 칠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게 되면 ‘도려내기’라고 보기 힘든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페리 장관은 “타격작전이 ‘상정되어’ 있긴 했지만 최후의 수단이었다”며 “최선의 방법인 외교수단으로 먼저 풀어나갈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월리엄 페리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
김영삼 정부의 군사력 사용 반대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노력으로 북·미는 군사충돌을 피하고 1994년 10월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를 이끌어냈다. 제네바 합의 이후 ‘동결 대 보상’ 방식의 여러 합의를 추진했지만 북한 핵개발을 막지 못했다. 미국이 북한 핵을 ‘통제 가능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금지선(red line)’을 정하지 않고 핵 동결에 급급하면서 북한붕괴를 기다리거나, 북한 위협론을 대중국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전략적 인내’ 등으로 시간을 보냄으로써 북한 핵무기 고도화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미국이 이란 핵개발과 북한 핵보유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데는 지정학 요인과 정권의 성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으로 이란 주변에는 지원해줄 강대국이 없지만 북한은 동맹을 맺고 있는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인질’로 잡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9·11 테러 이후 반테러전쟁이 본격화할 무렵 북한은 미국의 군사공격을 피하기 위해 남측을 ‘방패막이’로 활용하려고 했다. ‘악의 축’으로 지칭된 북한이 반테러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수령체제’의 특성에서 이유를 찾을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 최고지도자(수령)와 협상하여 합의를 이루면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보고 핵개발의 주요 고비 때마다 합의를 도출하며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북한도 미국이 군사력 사용을 위협하면 대화의 장으로 나와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 군사충돌은 피할 수 있었지만 북한 핵무력의 고도화를 막지 못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군사옵션의 선택은 공멸에 가까운 전면전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평소 지론으로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미국과 김정은의 북한 모두 ‘힘을 통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외교 노력이 필요하지만,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우리 정부가 북·미협상의 중재자, 촉진자로 나서기 어렵다. 지금은 이 대통령이 삼일절 기념사에서 밝힌 대로 우리가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 간의 대화가 조속히 재개될 수 있도록 미국은 물론 주변국과 충실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 대통령이 “유관국 협력을 통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라고 밝힌 것을 주목해야 한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한국전쟁 때 형성된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한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의 마지막 시도일 수 있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말하기 전까지는 핵개발의 명분을 북·미 적대관계에서 찾아왔다. 우리 정부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북·미관계를 정상화하는 ‘평화구상’을 구체화하고 관련 국가들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지속발전을 위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하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전 통일연구원장 ▷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전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현 국회 한반도 평화외교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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