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설 연휴를 맞아 찾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영어와 아랍어 사이로 중국어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리야드의 가로수길'이라 불리는 탈리야 거리 한복판에는 화웨이 건물이 자리하고, 경제 중심 구역인 킹압둘라금융지구(KAFD)에는 알리바바 클라우드 빌딩이 들어서 있다.
중국인이 현지에서 창업한 대형 슈퍼마켓 체인 위마트(중국명 원차오)에는 라마단 대신 춘제(중국 설) 장식이 곳곳에 걸려 있다. 베이징인지 리야드인지 헷갈릴 정도다. 리야드 현지에서 목격한 '차이나 공세'의 단면이다.
중국은 자국의 대외 전략인 '일대일로' 구상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비전 2030'과 연계하며 사우디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2월 코로나 팬데믹 이후 2년 7개월 만에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택한 것도 상징적이었다.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경제 다각화와 기술 강국 도약을 추진하는 사우디의 비전 2030 전략에 발맞춰 중국 빅테크와 제조기업들은 현지 시장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한국·일본차로 도배된 사우디 자동차 시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중국산 브랜드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아직 전기차 판매 비중은 1%를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탈석유화를 목표로 사우디가 전기차 산업을 장려하면서 중국 전기차 기업의 성장 잠재력은 크다. '갤럭시 천하'라고 불리는 중동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아너, 트랜션, 샤오미, 화웨이 등 중국 브랜드가 삼성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중국 내 출혈 경쟁을 피해 해외로 눈을 돌린 '메이드 인 차이나(중국산)' 전략이 사우디에서도 본격화한 모습이다. 급증하는 젊은 소비자층, 높은 1인당 GDP와 구매력, 커지는 스마트폰 보급률과 문화 및 엔터테인먼트 산업까지 사우디는 매력적인 시장임이 분명하다. 1990년 수교 이후 중국은 속도와 자본력을 앞세워 사우디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1962년 수교 이후 사우디와 관계를 쌓아온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동 붐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대차 '엘란트라'를 모는 한 기사는 "쿠리얄 자누비야(남한의 아랍어 발음)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한국차가 최고"라고 치켜세우며 곧바로 K-팝을 틀어주는가 하면 유명 관광지 다리아에서 만난 검은색 니캅 차림의 한 소녀는 한국 친구를 사귀고 싶다며 함께 셀카를 찍었다. 현지 화웨이 매장에서 만난 한 직원은 "한국에서 9년간 유학한 경험을 살려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한국 기업에) 일자리 기회가 별로 없어서 중국 기업에 취직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만큼은 중국보다도 높다는 것을 피부로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중동 정세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 우리나라 천궁-Ⅱ 요격 미사일이 실전에서 성능을 발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전 2030을 통해 글로벌 방산기업의 현지 생산과 기술 협력을 확대하려는 사우디는 얼마 전 리야드 국제방산전시회(WDS)에서도 K-방산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방산·첨단기술 협력은 앞으로 양국 간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우디는 지정학적 긴장과 기회가 교차하는 곳이다. 중국이 전기차, 스마트폰, 디지털 IT, 에너지 등 다방면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지만 안보 영역에서 전략적 신뢰를 단기간에 쌓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 60여 년간 관계를 이어온 한국은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사우디 현지인에게 '호감도 높은 나라'를 넘어 위기의 순간에도 '믿을 수 있는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리야드에서 마주한 변화는 그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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