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는 이미 인문학 실천의 현실이 됐지만 교육 제도는 이 변화를 아직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교육위원회(DEC)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16개 국가 대학생 86%가 이미 학업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인문학 전공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변화는 교육 제도 바깥에서 파편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커리큘럼과 교수자 개인 역량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이 간극을 좁힐 수 없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선제적 교육 개혁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4년 '교육강국건설계획요강'을 통해 AI 교육 개혁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하고 2035년까지 초·중등 교육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고등교육에서는 2023년 발표된 '보통고등교육 학과 전공 설치 조정 최적화 방안'에 따라 2025년까지 전체 전공의 20%를 개편하는 대규모 학과 재편을 단행했으며 살아남은 학과들은 AI 융합을 전제로 빠르게 재구조화되고 있다.
인문사회계열을 대상으로 한 신문과(新文科) 정책도 이 흐름 위에 있다. 국가 주도 개혁이 학문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핵심은 AI를 통한 인문학의 대체가 아닌 고도화에 있다. AI를 독립적 사고와 문제 해결 역량을 배가하는 도구로 삼아 인문학 고유의 가치를 심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국제 지표는 양국의 현주소를 여실히 증명한다. 2025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중국은 16위, 한국은 27위를 차지했다. 세계 디지털 경쟁력에서도 중국이 전년 대비 2계단 상승한 12위를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은 전년 6위에서 15위로 9계단이나 하락했다.
한국의 인재 경쟁력(49위)과 디지털·기술 인력 구인 능력(59위)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 수치를 단순히 교육 정책만의 실패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재 기반의 저변과 교육 설계의 방향이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지표들은 한국 교육의 구조적 재점검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시사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의 대학 교육 제도가 여전히 인문학을 AI 전환 논의에서 소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의 무게중심은 대부분 이공계에 집중돼 있다. 대학 현장도 다르지 않다. 이는 인문학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이며 교육 현장의 공백을 메울 정책적 과제가 시급하다.
첫째, 인문학 특화 AI 역량 표준 프레임워크를 개발하고 교수자 대상의 체계적인 연수 트랙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대학혁신지원사업 및 HK 3.0 등 주요 국가 지원 사업의 평가 지표를 개편해 AI·디지털 융합을 인문학 교육 혁신의 핵심 우대 항목으로 반영해야 한다.
셋째, AI 윤리 지침에 인문학적 가치를 내재화하고 데이터 분석 등 인문학 기반 직군 수요를 산학협력 모델과 직접 연결해야 한다.
기술적 역량이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범위를 결정한다면 인문학은 'AI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가치론적 질문을 던진다. 인문학의 역할을 제도가 명확히 인정하고 대학과 국가가 AI 교육 설계의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교육부가 올해 인공지능인재지원국을 신설하며 교육과정 개발에 나선 지금이 바로 인문학이 AI 담론의 설계자로 합류할 적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대학이 기술과 가치를 잇는 진정한 융합의 장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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