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지금 세 번의 파도를 연달아 일으키고 있다. 1차 파도는 개인이 클라우드의 거대언어모델(LLM)로 문서를 정리하고 코딩을 보조받는 단계였다. 2차 파도는 에이전트 AI로, 여러 LLM이 조합되어 개인의 직무 전체를 대신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3차 파도는 LLM이 물리적 기기 속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자동차 안에서 자율주행과 개인 비서 역할을 맡고, 휴머노이드 로봇에 탑재되어 공장과 건설 현장, 가정에서 인간과 나란히 일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 번의 파도가 연속으로 밀려오는 셈이다.
그런데 이 파도가 밀려오는 동안 세계 질서도 함께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AI 드론이 전장의 판도를 바꿨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팔란티어(Palantir)의 AI가 군사 작전 설계에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란과의 긴장 국면에서는 추락한 미군 장교의 심장 박동을 AI로 탐지해 구출하는 기술이 실전에 쓰였다. 전쟁터에서 AI는 이미 관념이 아니라 작전의 일부가 됐다.
공급망 분야에서도 오래된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수십 년간 제조업의 금과옥조였던 도요타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석유 공급이 끊기자 최적화보다 여유 재고가 더 중요해졌다. '저스트 인 타임'이 아니라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를 설계하는 시대가 됐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 폭증으로 에너지 압박까지 겹쳤다. 팍스 아메리카나, 자유무역 체제, 한·미 동맹으로 이어지는 전후 질서의 틀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세계는 빠르게 동맹의 시대에서 거래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모든 변화가 동시에 교차하는 지금, 대한민국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첫째, AI 인프라 주권이다. AI 생태계에서 주권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핵심 고리를 쥐는 데서 나온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미국이 만들더라도 그것을 구동하는 메모리가 한국산이라면 한국 없이는 AI가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강한 곳을 더 강하게 만드는 집중 전략이 진정한 AI 주권이다.
둘째, 공급망 회복탄력성의 재설계다. 전략 물자와 에너지의 공급 루트를 다각화하고, AI 기반 시뮬레이션으로 다양한 충격 시나리오에 미리 대비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저스트 인 케이스'는 단순한 재고 확보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위기 설계임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AI 리터러시 확보와 비즈니스 가치 창출이다. AI 모델은 미국 기업들이 압도적 기술력으로 만들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여 비즈니스 가치를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문가뿐만 아니라 전 분야 현업 종사자도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넷째,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다. 지금 학교는 여전히 산업사회 때 설계된 획일적인 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정해진 답을 외우고 시험으로 줄을 세우는 교육은 AI 시대에 맞지 않는다. 질문하고, 연결하고, AI와 협력해 문제를 발굴하고 풀어내는 인재를 기르는 방향으로 교육을 근본부터 바꿔야 할 때다.
한국은 제조업 강국이자 IT 강국으로서 세 번의 AI 파도를 모두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드문 나라다. 그러나 파도의 높이만큼 위험도 크다. 기술의 변화와 세계 질서의 변화를 함께 읽지 못하면 파도에 쓸려갈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AI 기술뿐만 아니라 격변하는 세계 속에서 AI를 어떻게 국가 전략의 무기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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