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큰 특징중의 하나가 좀처럼 누굴 비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그래서 침묵으로 말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 침묵은 어느 순간 패배할 수도 있다. 요즘이 딱 그런 시점이다. 그래서 일까. 그가 좀 달라졌다. 그는 요즘 자기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좀처럼 그러지 안했었는데…. 이번에는 작심한 듯 메시지를 쏟아냈다. 이유는 단순하다. 상대가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정치에는 금도가 있다. 비판은 가능하지만, 베끼기는 용납되지 않는다. 더구나 이름만 바꿔 자신의 것인 양 내놓는다면, 그것은 정책 경쟁이 아니라 정치적 기만이다. 정원오 후보의 최근 행보가 그 경계에 서 있다.
오세훈의 정책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도시의 구조를 바꾸는 설계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시작된 '디자인 서울'은 한때 전시행정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DDP는 서울을 세계에 각인시키는 상징이 됐다. 도시의 경쟁력은 결국 문화에서 나온다는 그의 철학은, 20년이 지나 현실이 됐다. 그런데 이 철학을 부정하던 세력이 이제 와서 '문화 수도'를 말한다. 모순이다. 더 나아가 DDP 철거를 주장하던 인사가 선거 전면에 나섰다. 이쯤 되면 질문해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는 무엇인가. 산업인가, 아니면 구호인가.
오세훈이 이번에 꺼낸 '창동 카드'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서울아레나를 중심으로 한 K-엔터타운 구상은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니다. 공연, 산업, 관광을 하나로 묶는 경제 전략이다. 365일 공연이 열리고, 기업과 일자리가 모이고, 관광객이 머무르는 도시. 이것은 슬로건이 아니라 설계다.
정원오의 문제는 여기서 드러난다. 그는 결과를 말하지만, 과정이 없다. 비전을 말하지만, 구조가 없다. 정책은 이름이 아니라 실행이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설계했고, 누가 밀어붙일 수 있는 지가 본질이다.
오세훈은 오랜 시간 비판을 감수하며 도시를 설계해왔다. 광화문광장, 한강 르네상스, 그리고 창동까지. 그 과정에서 그는 '보여주기'라는 비판을 넘어 비난을 견뎌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보여주기'는 이제 서울의 얼 굴이 됐다.
그래서 오세훈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책을 직접 설명하고, 상대의 모순을 짚는다. 정치적으로 보면 늦은 대응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지금은 말해야 할 순간이다.
이 선거는 단순한 인물 대결이 아니다. 도시를 바라보는 철학의 충돌이다. 하나는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가져다 쓰는 정치다. 유권자는 물어야 한다. 누가 서울을 만들었는가, 누가 서울을 흉내 내고 있는가. 그 답은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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