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호르무즈가 열려도 끝난 게 아니다…'자유의 바다'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린다 해도 세계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 사태가 드러낸 것은 단순한 봉쇄 리스크가 아니라, 국제 해상 질서 자체가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충돌은 이미 ‘해협’의 경계를 넘어섰다. 미국은 호르무즈에 그치지 않고 인도양까지 해상 차단 작전을 확대하며 이란산 원유 운송선을 나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이는 특정 해역의 통제 문제가 아니라, 공해상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해상 통제 경쟁’으로 국면이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란은 해협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며 ‘선별적 개방’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실험하고 있다. 일부 선박에만 통항을 허용하고, 안전 보장 명목으로 사실상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이란은 해당 통행료를 중앙은행 계좌에 예치했다고 공식 언급하며 제도화 단계에 들어섰다.  

이 같은 상업적 논리는 다른 해협으로 번질 조짐을 보인다. 말라카 해협에서도 통행료 부과 가능성이 거론되자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즉각 반발하며 “해협은 모두에게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당연했던 ‘항해의 자유’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봉쇄 여파로 파나마 운하 통행 수요가 급증하면서 통과권 가격은 전쟁 이전 대비 최대 10배까지 치솟았다.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물류 병목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이 ‘효율’에서 ‘우회’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에너지와 물류 구조 자체의 재설계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파이프라인 확대, 대체 항로 개발,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하루 2,000만 배럴이 통과하던 호르무즈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일부 물량이 다른 경로로 분산되고 있지만 이는 비용 상승과 비효율을 동반한다. ‘안정성 확보’라는 이름으로 글로벌 경제 전체의 비용 구조가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지금 벌어지는 일은 단순한 지정학적 충돌이 아니다. 국제 해상로를 둘러싼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해협이 공공재로 간주되며 자유로운 통행이 보장됐다면, 이제는 각국이 안보와 이익을 이유로 통제와 가격을 부과하는 ‘주권적 공간’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더욱이 이 변화는 단기적 이익을 넘어선 장기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정 국가가 해협을 통제해 얻는 수익이나 협상력은 일시적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촉발되는 물가 상승, 공급망 왜곡, 무역 위축은 결국 전 세계로 확산된다. 공공의 이익 위에 개별 이익이 올라서는 순간, 그 비용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원칙의 복원이다. 해협을 둘러싼 연안국과 주요 무역국들은 항해의 자유, 비차별적 접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공통 규범을 재정립해야 한다. 말라카 해협 국가들이 “어느 나라도 일방적으로 통행권을 결정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그 원칙을 설계하고 지킬 ‘어른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각국은 전략을 말하지만 질서를 말하지 않는다. 단기적 계산은 넘치지만 장기적 책임은 부족하다. 

호르무즈는 다시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바다’는 저절로 복원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방향이라면, 우리는 더 비싸고, 더 불안정하며, 더 분절된 세계를 감당하게 될 것이다. 
 

이란 국영TVIRIB가 2026년 4월 22일 공개한 영상 캡처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컨테이너선 ‘MSC 프란체스카’와 ‘에파미논다스’호 나포 작전에 참여한 병력의 모습 IRIB로이터 제공연합뉴스
이란 국영TV(IRIB)가 2026년 4월 22일 공개한 영상 캡처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컨테이너선 ‘MSC 프란체스카’와 ‘에파미논다스’호 나포 작전에 참여한 병력의 모습. [IRIB/로이터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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