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과거를 알면, 앞으로의 가치도 보입니다. 딱딱한 시세표 대신, 이 땅이 걸어온 길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앞으로 무엇을 봐야 할지 함께 생각해봅니다. 이은'별' 기자가 '주'식보다 재밌는 '부'동산 이야기를 '전(傳)'해드립니다.
한때 갈매기가 노닐던 강변 모래밭이 130억짜리 아파트가 됐습니다. 허허벌판이었던 땅이 대한민국 최고 부촌이 되기까지 채 50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역사와 더불어 미래 모습까지 살펴보겠습니다.
"2000년에 7억이었다고?"…소셜미디어를 달군 게시물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압구정 현대아파트 2000년 가격'이 뜨거운 화제가 됐습니다. 현재도 포털사이트에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검색하면 '2000년 가격'이 연관검색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0년 8월 기준 64평형 매매가가 약 7억~10억 원 수준이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확산되면서 "그때 한 채만 샀어도"라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유재석, 김희애, 강호동, 앙드레 김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거주하면서 부촌의 상징이 된 이 아파트의 현재 시세가 수십억 원을 훌쩍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따로 없습니다.그렇다면 분양 당시 가격은 얼마였을까요? 1976년 1·2차 입주 당시 분양가는 전용면적 30평형 기준 약 9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1980년 당시 대졸 신입사원 월급이 20만원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에도 꽤 고가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강남은 서울이 아니였다?"
압구정의 변천사를 이해하려면 먼저 '강남구'의 시작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강남구 지역은 1963년 서울 대확장 때 경기도에서 서울 성동구로 편입됐고 1975년에야 비로소 강남구로 분리됐습니다.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이름은 갈매기와 친하게 논다는 뜻으로, 개발 전까지 이곳은 그야말로 한적한 강변 마을이었습니다.1960년대 현대건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대형 국책사업을 맡으며 중장비와 건설 자재를 쌓아둘 넓은 땅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1970년부터 3년간 한강 바닥의 모래와 자갈을 퍼 올려 약 5만 평에 달하는 압구정 땅을 직접 메웠습니다. 현대건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40%를 담당했고, 정부는 그 공사대금으로 압구정동을 포함한 한강 공유수면 소유권을 넘겨줬습니다. 1975년 공유수면매립공사 대가로 이 땅을 불하받은 현대건설은 중대형 6,000여 세대 아파트촌을 조성했습니다.
1975년 착공에 들어간 1·2차 아파트는 이듬해인 1976년 완공됐습니다. 이후 1987년 14차 입주까지 약 15만 평이 넘는 대지 위에 총 82개동, 6,335세대가 차례로 지어졌습니다. 단지는 완성됐지만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1·2차 입주 당시 교통은 불편하고 기반시설은 턱없이 부족해 미분양이 나왔습니다. 1970년 기준 서울 인구의 76%가 강북에 살았고 강남은 텅 빈 신도시 예정이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논현동에 공무원 아파트를 지어 공무원들을 반강제로 이주시키는 고육책까지 동원했지만 기반시설 부족으로 강북으로 되돌아가는 '강북회귀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강남의 운명을 바꾼 세 가지
인기 없던 강남을 뒤바꾼 계기는 학군, 지하철, 아파트 투기 열풍입니다. 첫째, 1970년대 초, 경기고·휘문고·서울고·경기여고·숙명여고 등 서울의 내로라하는 명문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줄줄이 이전했습니다. 학군에 따라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강남구와 서초구를 아우르는 '8학군'의 시초가 됐습니다.둘째, 1984년 완공된 지하철 2호선은 강북과 강남을 하나로 이어주며 인구 이동의 물꼬를 텄습니다. 완공 이듬해인 1985년, 강남 7개구 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며 강북 중심이던 서울의 인구 지형이 뒤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셋째, 아파트 투기 열풍이 불었습니다. 학군과 교통이 갖춰지자 현대건설 브랜드와 강남 개발 열기가 맞물리며 고소득 중산층과 상류층이 몰려들었습니다. 7차 단지 입주가 끝날 무렵 압구정 현대는 이미 '명품 아파트'로 불리고 있었고, 권력층도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값이 뛰자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현대건설은 1,500여 가구 중 950가구를 무주택 사원들에게 분양할 계획이었지만, 실제로는 700여 가구가 고위공직자·국회의원·군장성·법조인 등에게 돌아갔습니다. '압구정 현대 특혜 분양 사건'입니다. 당시 건설사는 '50가구 이상 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자는 공개 분양해야 한다'는 주택건설촉진법을 무시하고 아파트 상당수를 주변 집값의 50% 수준으로 특혜 분양했습니다.
숫자로 보는 50년…900만원에서 130억원까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압구정 현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됐습니다. 1989년 4월 동아일보는 압구정 현대 80평형이 7억 5000만 원에 팔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는 평당 940만 원이었습니다. 10년 뒤인 1999년 10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같은 80평형 시세는 15억 원 선으로, 평당 1875만 원까지 뛰었습니다. 10년 만에 두 배가 된 셈입니다.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131㎡(약 40평)는 2006년 약 16억 원에서 2026년 현재 약 70억 원으로 20년 만에 4배 이상 올랐습니다. 196㎡(약 59평)는 2006년 약 29억 원에서 2025년 130억 5000만 원에 바뀌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20년 새 349% 급등한 수치입니다.
물론 가격이 정체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131㎡는 13억~18억 원대 박스권에 갇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했습니다. 유럽 재정위기와 국내 부동산 경착륙 우려가 맞물린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2017년을 기점으로 저금리·유동성 과잉 환경이 조성되면서 가격이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고, 2021년에는 131㎡가 40억 원을 돌파하며 4년 만에 두 배를 찍었습니다. 2022년 말 금리 인상 충격으로 이듬해 일시 조정을 받았지만, 재건축 기대감을 바탕으로 반등했습니다.
향후 50년간 미래 모습은?
1976년 입주 이후 49년이 지난 이 아파트는 이제 새로운 50년을 준비 중입니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단지 안에서 로봇이 24시간 순찰을 돌고, 호출하면 알아서 움직이는 무인 셔틀버스가 주민을 실어 나릅니다. 지금은 주차 공간이 부족해 고급차도 3중 주차해 놓는 단지에서 첨단 기술로 굴러가는 미래형 주거지로 탈바꿈합니다.
집 내부도 달라집니다. 지금은 방과 거실 위치가 고정돼 있지만, 재건축 이후에는 기둥과 벽체를 제외한 내부 공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치 빈 캔버스처럼 공간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저층에서도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건물 아래쪽을 비워두고, 거실 기둥을 없앤 넓은 통유리창으로 좌우 270도 한강 전망을 확보하는 설계도 제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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