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불똥에 감자칩 봉지도 흑백으로… 日 가루비, 잉크난에 포장 교체

  • 나프타발 인쇄용 잉크 수급 불안에 14개 주력상품 순차 전환

  • 닛케이 "식품 매대의 색 경쟁 상식 흔들려"… 업계 전반 확산 가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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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연합뉴스]



일본 스낵업체 가루비(Calbee)가 포테토칩 등 주력 제품 포장을 흑백으로 바꾼다. 중동 정세 악화로 나프타 유래 인쇄용 잉크 수급이 불안정해지자, 상품 공급 차질을 막기 위해 포장 색부터 줄이는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과자 봉지의 색깔까지 바꿔놓은 지정학 리스크는 일본 소비재 업계 전반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12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매체 보도에 따르면 가루비는 포테토칩 '우스시오맛'과 '콘소메펀치', '노리시오'는 물론 '갓파에비센', '가타아게포테토', '후루그라' 등 모두 14개 품목의 포장을 25일 이후 출하분부터 순차적으로 흑백 2색 포장으로 전환한다. 가루비는 이달 8일 납품처인 소매업체들에 이런 방침을 통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나프타 유래 인쇄용 잉크 원료의 수급이 흔들린 것이 발단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포장 인쇄에 쓰이는 그라비어 잉크는 용제와 수지 등 나프타 유래 원료 비중이 높다. 특히 톨루엔과 자일렌 같은 용제는 도료, 신나, 접착제에도 함께 쓰여 최근 수급이 빠듯해졌고, 색을 내는 안료 역시 상당 부분 석유계 원료에 의존한다. 일반적인 포장 인쇄에는 4~8색의 잉크가 들어가는데, 흑백 인쇄로 전환하면 원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루비는 이를 단순한 임시조치가 아니라 선제 대응으로 보고 있다. 닛케이는 가루비가 3월 말부터 모노크롬(흑백) 포장을 검토해 왔으며 이를 통해 잉크 사용량을 절반 정도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루비가 확보한 용제 재고는 여름 무렵까지로, 수확기를 맞는 햇감자를 제때 출하하지 못하면 손실이 커진다. 포장 공급이 흔들리기 전에 먼저 잉크 사용량을 줄여 대응에 나선 셈이다.
 

단순 포장 확대 전망


파장은 가루비 한 회사에 그치지 않는다. 닛케이는 일본 슈퍼마켓 식품 매대가 그동안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색과 디자인 경쟁의 공간이었지만, 이런 상식이 흔들리고 있다고 짚었다. 이토햄요네큐홀딩스 우라타 히로유키 사장은 이달 1일 결산 발표회에서 "앞으로 컬러풀한 포장은 어려워질 것이다. 흑백 등 심플한 포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닛신제분웰나도 6월 납품분부터 '마마 스파게티' 건면 묶음 테이프에 인쇄를 넣지 않는다. 종래에는 빨간색으로 삶는 시간을 표기했지만 이를 없앤다. 소면과 메밀국수 등 다른 건면 묶음 테이프도 같은 방식으로 바꾼다. 한 중견 음료업체는 5월 하순부터 생산을 맡는 소매 대형사 브랜드 등 유산균 음료 15개 품목의 용기 인쇄를 없애기로 했다.

포장재 단가 인상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닛케이에 따르면 한 중견 과자업체는 포장재 업체로부터 잉크와 필름 부족을 이유로 6월 이후 필름 가격을 20~40%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인쇄·포장 기업 TOPPAN홀딩스는 닛케이에 "톨루엔 등 용제는 앞으로 조달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흑백 인쇄로 용제 사용을 줄이는 흐름이 업계 전반에서 가속화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놓고는 평가가 엇갈린다. 오비린대 미야모토 후미유키 교수는 닛케이에 "포테이토칩의 노란색을 보면 식욕이 돋듯, 포장 색은 소비 행동의 잠재의식과 깊이 연결돼 있다. 흑백이 되면 상품의 얼굴 자체를 잃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루비도 이런 위험을 의식해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표 상품으로 대상을 좁혔다. 반면 일본패키지디자인협회 측은 "컬러가 많은 매대에서 흑백은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생활과 직결된다는 점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효과도 있다"는 시각을 내놨다.

아사히신문은 1차 대전 당시 독일발 염료 부족으로 세계가 혼란에 빠졌던 사례, 2차 대전 중 일본에서 화려한 옷차림이 금지됐던 역사를 거론하며, 전쟁은 늘 사람들의 삶에서 색을 빼앗아 간다고 짚었다. 에너지와 물류를 넘어 과자 봉지의 색깔까지 바꿔놓은 중동 위기의 파장이 일본 소비자의 일상으로 번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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