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서울만 AI 하란 법 있나"… AI공약 쏟아내는 지방 후보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전라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인공지능(AI)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은 AI 기반 공공서비스와 창업 생태계 조성에 방점을 찍고 있고, 국민의힘 후보들은 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첨단 제조업 육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제 지방선거에서도 AI가 핵심 의제가 됐다는 점이다.


이는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과거 지방선거가 토목 사업과 개발 공약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로봇, 스마트 제조 같은 미래 산업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지역 정치가 단순한 예산 경쟁을 넘어 미래 성장 전략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선거 때마다 거창한 공약이 남발된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AI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 전력 인프라가 필요한 분야다. 지방정부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방의 AI 전략 자체를 폄훼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중앙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다. AI는 더 이상 특정 기업이나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 됐기 때문이다.


AI 경쟁은 ‘지역 산업 생존’의 문제다


세계는 AI 패권 경쟁에 들어갔다. 미국은 엔비디아·오픈AI·마이크로소프트 등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초거대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고, 중국은 국가 차원의 지원으로 AI 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중동 주요국도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인프라 유치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업 강국이지만 AI 인프라와 인재 경쟁에서는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특히 수도권 집중 구조가 심각하다. AI 인재와 스타트업, 데이터 인프라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역은 점점 비어가고 청년은 떠난다. 지역소멸 위기가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AI 산업마저 수도권에만 집중된다면 지방경제의 미래는 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충청·전라권 후보들이 AI를 지역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 것은 단순한 선거용 구호만은 아니다. 충북의 AI 창업특구와 데이터센터 전략, 충남의 AI 제조 혁신, 광주의 AI 반도체 산업, 전북의 피지컬 AI 전략은 모두 지역 산업 구조와 연결돼 있다.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미래 산업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제조업 중심 지역일수록 AI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AI는 단순한 소프트웨어 산업이 아니다. 앞으로 자동차·반도체·농업·물류·의료·에너지·국방까지 모든 산업의 운영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다. 독일이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한 것도 제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본 역시 지방 제조업과 로봇·자동화 전략을 결합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충남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전북의 농기계·이차전지, 광주의 자동차 산업은 AI와 결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선거에서 AI 공약이 등장하는 것은 지역 산업의 생존 위기를 반영하는 신호다.


AI는 지방정부만으로 안 된다


다만 냉정하게 봐야 할 현실도 있다. AI 산업은 지방정부 차원만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데이터센터 하나만 해도 막대한 전력과 용수, 통신 인프라가 필요하다. 반도체 공장이나 AI 클러스터는 수조원 이상의 투자가 들어간다. 대학과 연구소, 전문 인력 공급 체계도 필수다.


결국 국가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역의 AI 공약은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분담이다. 지방정부는 지역 산업 특성과 연계한 전략을 만들고, 중앙정부는 전력·세제·인재·R&D를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


특히 전력 문제는 핵심이다. AI 산업은 전력 소비가 큰 산업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원전과 재생에너지, 소형모듈원자로(SMR)에 관심을 갖는 것도 안정적 전력 확보가 AI 경쟁력의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데이터센터와 AI 공장을 확대하려면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


인재 문제도 심각하다. AI 전문 인력은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지방 대학은 갈수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역 AI 전략이 성공하려면 지방 국립대와 지역 거점 대학을 AI 인재 양성 허브로 키워야 한다. 단순히 공장이나 데이터센터만 짓는다고 AI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행정 AI도 중요하다. 지방정부들은 복지·돌봄·교통·재난 대응에서 인력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이 문제는 더 커진다. AI는 산업 정책이자 지방행정 혁신 수단이 될 수 있다. AI 돌봄, 응급의료 연계 시스템, 재난 예측 시스템 같은 공약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AI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AI가 지역경제를 자동으로 살려주는 것은 아니다. 보여주기식 데이터센터 유치 경쟁이나 실현 가능성 없는 초대형 공약은 혈세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산업과 얼마나 연결되느냐다. 지역의 강점 산업과 결합되지 않는 AI 전략은 오래가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AI 공약 경쟁이 본격화한 것은 한국 정치와 산업정책 측면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정치가 미래 산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지역도 더 이상 단순 SOC 경쟁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AI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결국 지역 경쟁력의 총합이다. 수도권만 성장하고 지방이 무너지면 국가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AI는 특정 기업의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균형발전 전략이 돼야 한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공약도 사라지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여야를 떠나 중앙정부가 지역 AI 전략을 국가 프로젝트로 끌어올려야 한다. AI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쟁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장기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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