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가본 사람들은 묘한 경험을 한다. 밤늦게 호텔 밖으로 나왔다가 편의점 안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삼각김밥 종류만 수십 개이고, 도시락과 디저트는 웬만한 식당·카페보다 정교하다. 직원들도 놀랄 만큼 친절하다. 일본 편의점은 단순한 소매점이 아니다. 도시의 밤과 인간의 생활 리듬을 떠받치는 사회 인프라에 가깝다.
그 거대한 시스템을 만든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 세븐&아이홀딩스 전 회장이자 일본 편의점 산업의 실질적 창업자인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 명예고문이다. 향년 93세. 스즈키 고문은 물건을 많이 판 사람이 아니라, 일본인의 생활 방식이 어떻게 변할지를 누구보다 먼저 읽은 사람이다.
1970년대 일본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시대였다. “큰 것이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작은 가게는 낡은 산업으로 취급됐다. 당시 일본 유통업계는 미국식 대형 유통 모델을 따라가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스즈키는 미국 출장길에서 작은 가게 하나를 발견한다. 세븐일레븐이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소형 슈퍼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미국 전역에 수천 개 체인을 가진 거대한 기업이었다. 그는 직감했다. 일본 역시 결국 ‘시간의 편리함’을 파는 시대로 갈 것이라고. 하지만 주변 반응은 냉담했다.
“일본에는 이미 동네 가게가 많다.”
“소형 점포 시대는 끝났다.”
“미국 모델은 일본에서 실패한다.”
사내 반대도 심했다. 판매 경험도 없는 사람이 허황된 사업을 추진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러나 스즈키 고문은 오히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 상식에 갇히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일본 세븐일레븐 창업 멤버 상당수는 유통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노동조합 간부, 제빵회사 영업사원, 항공자위대 출신까지 섞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일본 최대 유통혁신이 사실상 ‘비전문가 집단’에서 출발한 셈이다.
스즈키 고문은 당시 일본 사회가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먼저 읽고 있었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핵가족이 늘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됐다. 사람들은 점점 늦게 귀가했고,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이 결국 물건보다 ‘시간의 편리함’을 사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 통찰이 일본 편의점을 만들었다. 1974년 도쿄 도요스(豊洲)에 일본 1호 세븐일레븐이 문을 열었다. 첫 손님이 산 물건은 800엔짜리 선글라스였다. 스즈키는 훗날까지 그 장면을 기억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짜 혁신은 그 이후였다. 그는 편의점을 단순한 ‘작은 슈퍼마켓’으로 만들지 않았다. 일본인의 생활 속 불편을 하나씩 편의점 안으로 끌어들였다. 도시락과 삼각김밥을 강화했고, 하루 여러 차례 배송 시스템을 만들었다. 공과금 수납을 도입했고, ATM을 설치했다. 지금 일본 편의점에서 너무나 당연한 서비스들이 사실 당시에는 모두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던 것들이었다. 특히 세븐은행 ATM은 일본 금융권조차 실패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지금 세븐은행은 일본 최대 ATM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가 됐다.
스즈키 고문은 일본식 편의점 모델을 중국에도 이식했다. 1990년대 중국 정부는 세븐일레븐의 중국 진출을 요청했다. 당시 중국은 아직 현대적 유통 인프라가 거의 갖춰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물류 시스템도 부족했고, 서비스 문화 역시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엇보다 일본식 ‘접객 문화’ 자체가 중국에서는 생소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손님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문화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계획경제 체제와 배급 시스템이 유지되면서 '파는 사람이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약했다. 하지만 스즈키는 중국에서도 똑같이 강조했다.
그는 편의점을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생활의 불편을 해결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베이징 세븐일레븐 직원들은 ‘환잉광린(歓迎光臨)’을 외쳤고, 두 손으로 돈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당연했던 행동이 중국에서는 혁신처럼 받아들여졌다.
흥미로운 것은 스즈키 고문은 경쟁사를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일본인의 생활 패턴을 관찰했다. 왜 사람들은 밤늦게 도시락을 찾는지, 왜 출근길에 커피를 사는지, 왜 비 오는 날 우산 매출이 급증하는지 집요하게 분석했다. 지진이 발생하면 일본 편의점은 가장 먼저 도시 기능을 복구한다. 물류망이 다시 움직이고, 도시락이 들어오고, ATM이 살아난다. 일본 사회에서 편의점은 이미 가게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 일부에 가깝다. 고령화가 시작되자 노인들의 생활 거점 역할을 맡았고, 지방 은행들이 사라지자 금융 기능을 대신했다.
일본의 강점은 거대한 혁명보다 생활 속 작은 혁신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늘 편의점이 있었다. 오늘날 한국 편의점 문화 역시 일본 모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인들이 편의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택배를 보내고,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 역시 스즈키가 만든 생활 혁신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스즈키 도시후미 고문의 죽음은 단순한 기업인 부고로 끝나기 어렵다. 일본 편의점의 진짜 상품은 삼각김밥도 도시락도 아니었다. 그가 팔았던 것은 결국 인간의 시간과 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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