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그냥 웃자고 한 말'에 담긴 무게, 조롱의 책임

김광중 법무법인유한 클라스한결 변호사 사진김광중 변호사 제공
김광중 법무법인(유한) 클라스한결 변호사. [사진=김광중 변호사 제공]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리는 행위, 즉 조롱(嘲弄, Ridicule)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오락거리가 됐다.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넘기기만 해도 누군가의 실수, 외모, 혹은 평범한 일상이 '밈(Meme)'이라는 이름으로 박제돼 대중의 웃음거리로 소비된다. "그냥 웃자고 한 말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는 얄팍한 변명은 조롱을 일삼는 이들의 방패가 되었다. 

남의 결점을 빗대어 공격하는 것이기에 풍자(諷刺, Satire)와 조롱은 한 끗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풍자는 권력이나 불합리한 제도 등 강자의 잘못을 드러내기 위해 던지는 통찰의 유머다. 반면, 조롱은 대개 상대적 약자나 다른 생각을 가진 평범한 이들에게 쏟아진다. 조롱은 대상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 수단이 정당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기에 애초에 이성적인 반박은 불가능하다. 말 한마디로 상대의 인격을 무가치하게 만들어 버리는, 언어의 가성비를 극대화한 효율적 폭력이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조롱은 '책임의 파편화' 때문에 더욱 잔인해진다. 조롱의 게시물을 처음 만든 사람, 이를 나르는 사람, 댓글로 동조하며 낄낄거리는 사람, 그리고 ‘좋아요’를 누르고 지나가는 사람까지. 거대한 조롱의 사슬 속에서 개인의 책임감은 잘게 쪼개어진다. 사슬이 커질수록 가해자들은 죄책감을 무한대로 쪼개 나누어 가지며 자기 면죄부를 얻지만, 피해자가 짊어져야 할 고통은 그 사슬의 크기만큼 커져간다. 

이제 조롱은 사적인 영역을 넘어 대중매체의 코미디로 포장되고, 기업의 자극적인 마케팅 수단까지 됐다. 최근 대중의 공분을 산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파문이 대표적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5·18 민주화운동과 고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이 한낱 텀블러 장사치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역사적 아픔과 집단적 트라우마마저 자극적인 조롱의 밈으로 소비됐다. 정치권의 언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합리적인 정책 논쟁 대신 상대를 희화화하고 모욕하는 '조롱의 언어'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저열한 수단으로 손쉽게 사용된다. 말이 범람하는 선거철이면 그 쏟아지는 말의 수만큼 책임감도 옅어지는 듯 조롱도 함께 범람한다. 

조롱의 일상화는 사회를 불신과 냉소로 가득 차게 한다. '나도 언제든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는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들고, 사회적 연대를 무너뜨린다. 건강한 공론장은 설 자리를 잃는다. 대중매체와 자본, 정치가 조롱을 정당한 유희로 승인할 때 우리 사회의 정화 기능은 마비된다.

공동체를 지키는 수단이 법이지만 조롱 앞에서는 무기력하기 십상이다.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않고 경멸적 감정을 표현하는 조롱은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기 어렵다. 모욕죄의 처벌 대상은 되지만 그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죄책을 묻기 어렵다. 인격권 침해의 민사상 책임도 지나치게 너그럽다. 법이 조롱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묻는 순간은 피해자의 인격이 파멸되는 수준에 이르는 정도나 될 때다. 사회적·정치적 책임은 보다 유효적절한 처벌수단이 될 수 있다. 대중의 자발적인 불매 운동이나 정치적 심판은 법이 메우지 못하는 '책임의 공백'을 채우는 강력한 사회적 제동 장치가 된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하고, 정치적 심판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상의 조롱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법과 제도의 한계를 넘어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결국 인간의 내면에 있다.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서 주인공 박경세와 황동만은 서로를 끊임 없이 조롱한다. 절친한 선후배를 철천지원수로 만든 것은 서로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느끼는 우월감, 열등감이었다. 조롱은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의 무가치함을 인식할 때 발현되는 비겁한 방어기제다. 상대를 끌어내려야 자신의 가치가 증명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황동만이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박경세에 공감했을 때, 이들은 비로소 조롱의 사슬을 끊고 예전의 연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조롱의 사슬이 크고 촘촘하다. '그냥 웃자고 한 말'이라는 얄팍한 방패 뒤에 숨어 타인의 인격을 벼랑 끝으로 미는 행위는 결코 유희가 될 수 없다.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가볍게 누르던 '좋아요', 배설하듯 뱉어낸 글, 그리고 재미로 공유한 밈(Meme) 하나가 누군가의 숨을 막는 거대한 사슬의 조각이 된다. 법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결국 우리의 성찰이다. 서로의 취약함을 품어주는 성숙한 시선만이 우리 사회를 집단적 냉소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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