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종전 합의에도 물가 상방 압력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중동 전쟁 이후 급등한 국제유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다 경기 호조에 따른 수요 압력과 임금 상승 가능성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미국과 이란 간 종접 합의로 중동지역 리스크가 완화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앞으로 물가 경로에는 여전히 상방 위험 잠재해있다"며 "대내외 여건을 종합적으로 보면 소비자물가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높은수준의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한은은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 내외, 근원물가 상승률은 2% 중후반 수준으로 전망했다. 내년에도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상승률 모두 물가안정목표인 2%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유가 상승에 따른 비용 압력은 점차 완화되겠지만 경기 회복세에 따른 수요 측 물가 압력이 확대될 것으로 봤다.
올해 상반기 물가는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목표 수준을 상당 폭 상회했고 생활물가 상승률도 3% 초중반까지 높아지면서 취약계층의 생계비 부담이 커졌다고 한은은 진단했다.
물가를 끌어올린 가장 큰 요인으로는 국제유가가 꼽힌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2월 배럴당 60달러 중반 수준에서 중동 전쟁 발발 이후 80달러대로 상승했고, 지난 5월에는 100달러를 넘어섰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같은 기간 60달러대에서 한때 110달러를 돌파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이 종전에 합의하면서 중동 정세가 다소 안정되는 모습이지만 국제유가는 여전히 전쟁 이전보다 높은 80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은은 중동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피해 시설 복구와 공급망 정상화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국제유가가 당분간 전쟁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되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하반기부터는 유가 충격이 석유류 가격을 넘어 근원물가 품목으로 확산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석유류 제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직접효과에 그치지 않는다. 생산 원가와 유통·물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공업제품과 운송·서비스 가격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간접효과도 발생한다. 여기에 기대인플레이션 상승까지 더해지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는 2차 파급효과가 나타난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유가 충격이 단기에 그치는 경우 유가가 10% 상승해도 5개월 뒤 근원물가는 0.06% 오르는 데 그쳤다. 반면 유가 상승이 장기화하는 경우에는 유가가 10% 오를 때 5개월 후 근원물가가 0.1%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호조에 따른 수요 확대는 물가 상승 요인으로 지목됐다. 그간 한은은 공급 측면의 물가 상방 압력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최근 반도체 업황 개선으로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신 총재는 "물가가 비용에 더해서 국내 경기 개선세에 따른 수요 압력도 점차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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