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몰린 중장년] 회사에선 늙었지만 노인은 아니야…대한민국 '끼인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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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 김씨는 지난해 말 20여 년간 다닌 회사를 떠났다. 명목상으로는 희망퇴직이었다. 그가 받아든 현실은 냉정했다. 재취업 사이트에서 50대 중반을 원하는 정규직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경력은 길었지만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아직 대학생인 둘째 등록금이 남아 있고, 80대 노모 병원비도 매달 빠져나간다. 그는 노인이 아니지만, 노동시장에서는 이미 오래된 사람으로 분류됐다.

대한민국 중장년층이 노동시장과 복지제도 사이 사각지대에 놓이고 있다. 회사에서는 ‘나이 든 인력’으로 밀려나지만, 제도상으로는 여전히 경제활동의 중심 세대로 간주된다. 청년처럼 취업지원의 우선 대상도 아니고, 노인처럼 기초연금·돌봄 정책의 주요 대상 역시 아니다. 부모 부양과 자녀 지원을 동시에 떠안은 채 정작 자신의 노후 준비는 뒷전으로 밀리는 ‘끼인 세대’가 된 셈이다.

정치권에서 정년 65세 연장 논의가 활발하지만 현실의 퇴직 시계는 훨씬 빠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구변화 대응 사회보장정책 성과분석을 위한 수요 측면 지표 연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5~64세의 주된 일자리 퇴직 평균연령은 49.4세다. 법정 정년 60세는 물론 정년 연장 논의의 기준선인 65세와도 간극이 크다. 

퇴직 사유도 정년보다 비자발적 요인이 더 많다. 보고서에 따르면 55~64세가 주된 일자리를 떠난 이유 중 구조조정, 폐업이 29.1%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년을 채우고 계획적으로 은퇴하는 것이 아닌, 기업 사정과 경기 변화에 따라 밀려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셈이다.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난 중장년이 곧바로 안정적인 두 번째 일자리로 이동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2024년 기준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38.2%였는데, 규모로는 60세 이상이 281만2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50~59세 비정규직도 166만1000명에 달했다. 주된 일자리에서 이탈한 뒤 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재취업하는 중장년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소득도 나이가 들수록 뚜렷하게 꺾인다. 2024년 임금근로자의 실질 월평균임금 중위값은 50~54세 262만7000원에서 55~59세 245만2000원, 60~64세 210만2000원으로 낮아졌다. 50대 초반과 60대 초반을 비교하면 월 52만5000원, 약 20% 줄어드는 셈이다.

55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한 선행연구에서도 55~64세 취업자 중 퇴직 후 이직을 경험한 비율은 2018년 44.7%에서 2022년 49.4%로 증가했다. 이직 전 주된 일자리가 단순직인 비율은 2022년 15.8%였지만 이직 후 현 일자리에서 단순직 비중은 33.3%로 뛰었다. 경력과 숙련이 누적된 중장년이 퇴직 이후 기존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고 단순직으로 밀려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책 대상에서도 중장년은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보사연이 중앙정부 사회보장사업을 분석한 결과 사업명에서 직접 ‘중장년’을 표기하거나 생애주기 구분에서 중장년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은 중장년 경력지원제, 중장년 기술창업센터 지원사업, 제대군인전직지원금 등 3개에 그쳤다. 

하지만 중장년의 위험은 일자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혼, 사별, 비혼, 가족 해체 등으로 혼자 사는 50~64세가 늘면서 고용 불안은 곧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자 1인 가구 중 50~64세 비중은 26.2%로 20·30대보다 높았다.

김씨는 요즘 새벽 배송과 시설관리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그는 “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일을 살릴 수 있는 자리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일할 의지와 경험도 있지만 이를 받아줄 일자리와 제도가 부족한 환경에서 ‘끼인 세대’에 대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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