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투자자가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 해외 투자자가 불편 없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 새로운 제도가 안착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질 때 비로소 시장 경쟁력도 완성된다.
K-증시의 초호황기엔 한국예탁결제원이 구축한 안정적 인프라가 있다. 올해 52주년을 맞는 예탁결제원은 국내 유일의 중앙예탁결제기구다. K-증시의 르네상스를 맞아 외국인 투자환경 개선, 결제주기(T+1) 단축, 토큰증권(STO), 디지털 자산 등 단순한 결제기관을 넘어 시장 인프라 기관으로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마침 예탁결제원의 진화를 이끌 사령탑도 바뀌었다. 정통 금융관료 출신인 이윤수 예탁결제원 사장이다. 이 사장은 지난 26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예탁결제원은 단순히 증권을 보관하고 결제하는 기관이 아니라 시장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곳"이라며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투자자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인프라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인프라는 문제가 없을 때는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번 흔들리면 시장 전체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며 "예탁결제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시장 참여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4일 한국 증시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DM) 지수 편입이 또다시 불발됐다. 내심 지수 편입을 기대했던 국내 투자자 입장에선 아쉬운 결과다.
이윤수 사장은 "해외 투자자가 체감하는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MSCI 평가에서도 시장 접근성이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며 "해외 투자자가 한국 시장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느끼는 불편을 줄이는 것이 결국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예탁결제원은 이에 맞춰 외국인 투자환경 개선을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통합계좌(Omnibus Account)를 도입해 계좌 개설 절차를 간소화했고, 외국 법인의 법인식별기호(LEI) 확인 절차도 지원하면서 투자 편의성을 높였다.
이 사장은 "제도 개선은 상당 부분 이뤄졌지만 시장이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해외 투자자들이 보다 편리하게 한국 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시장 접근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결제주기 단축(T+1)은 최근 자본시장 인프라 개편의 핵심 과제 가운데 하나다. 이 사장은 이를 단순히 결제일을 하루 앞당기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 운영 체계 전반을 바꾸는 작업으로 바라봤다.
그는 "거래는 하루 만에 끝날 수 있지만 결제는 시장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라며 "증권사와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은 물론 해외 예탁기관까지 모든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제는 단 한 번의 오류도 시장 신뢰를 흔들 수 있는 영역이다. 거래량이 늘고 거래시간이 확대될수록 후선 시스템의 안정성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사장은 "미국도 거래정보 자동매칭 등 시스템을 먼저 구축한 뒤 T+1 체계를 도입했다"며 "우리 역시 자동화와 표준화를 통해 시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의 디지털 전환 역시 예탁결제원이 준비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예탁결제원은 현재 토큰증권(STO) 제도 안착을 위한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장은 "토큰증권은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발행부터 유통까지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시장도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탁결제원은 플랫폼 구축과 함께 발행 적격성 확인과 총량 관리 등을 맡아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는 "새로운 금융 서비스가 등장할수록 이를 뒷받침할 시장 인프라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예탁결제원도 디지털 금융 환경 변화에 맞춰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투자 규모는 약 2000억 달러(약 300조원)에 이른다. 이윤수 사장은 "이제는 국민 재산 300조원이 해외에 있는 시대"라며 예탁결제원의 역할도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 재산을 해외 보관기관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며 "안전한 보관과 결제는 물론 배당과 의결권 행사까지 투자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는 것이 예탁결제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시장의 결제주기 단축(T+1)과 거래시간 확대 등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현지 대응 역량도 강화할 계획이다. 그는 "뉴욕 현지 대응 체계 강화 등을 포함해 해외 투자 환경 변화에 맞춰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할 것"이라며 "국민 자산을 보다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 내내 이 사장이 가장 많이 강조한 것은 '시장 신뢰'였다. 시장 접근성 개선과 결제주기 단축, 토큰증권 플랫폼 구축도 결국 투자자가 믿고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좋은 기업과 풍부한 유동성도 중요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예탁결제원은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자본시장 전체를 떠받치는 인프라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환경은 계속 변하지만 예탁결제원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며 "시장 참여자들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글로벌 수준의 시장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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