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과학수사는 왜 법정 밖에 머물러 있나

"국과수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법조 기사를 쓰다 보면 익숙하게 접하는 문장이다. 살인 사건이든, 산업재해든, 의료사고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는 수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DNA와 디지털포렌식, 폐쇄회로(CC)TV 분석은 이제 자백보다 강한 증거가 되는 시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국가기관인 국과수는 익숙한데, 왜 민간 과학수사 전문 기관이나 법의학 전문가가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는 장면은 좀처럼 보기 어려울까.

얼마 전 만난 윤외출 법무법인(유) 지평 고문은 이 질문의 답을 사법 제도에서 찾았다. 그는 경찰 재직 시절 국내 프로파일링 제도 도입을 이끈 과학수사 전문가다. 수십년간 강력범죄 현장을 누빈 그의 진단은 의외였다. 과학수사가 더 발전하려면 장비를 더 들이는 것보다 공판중심주의가 실질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형사소송법상 공판중심주의를 지향한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여전히 경찰과 검찰 수사 단계에서 작성된 기록과 결과가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반면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는 법정이 증거 경쟁의 무대다. 검사가 제출한 DNA 감정이나 포렌식 결과를 변호인이 전문가를 통해 반박하고, 법의학자와 과학수사 전문가가 법정에서 의견을 낸다.

결국 차이는 '수요'다.

전문가가 성장하려면 전문가를 찾는 시장이 있어야 한다. 재판에서 전문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법의학자와 디지털포렌식 전문가, 의료감정 전문가가 직업으로 자리 잡는다. 연구소와 기업도 생긴다. 윤 고문이 "수요가 창출돼야 공급이 따른다"고 강조한 이유다.

수요가 없으니 사람도 모이지 않는다. 윤 고문은 법의학자를 예로 들었다. 시신을 마주하고 부검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일은 육체적·정신적 부담이 크다. 그런데 의사 면허를 갖고 일반 임상의보다 훨씬 낮은 처우를 감내해야 한다면 누가 기꺼이 법의학을 택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구조에서는 인재가 쌓이기 어렵다.

물론 공판중심주의가 만능은 아니다. 전문가 감정이 늘어나면 재판은 길어지고 비용도 커진다. 판사와 법원 인력 확충도 뒤따라야 한다.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현재 구조의 효율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얻는 것이 있다. 국가가 제시한 증거를 민간 전문가가 다시 검증하고, 그 결과를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다투는 구조는 실체적 진실에 더 가까이 갈 가능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억울한 사람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기회를 넓힌다. 형사사법의 목적은 사건을 빨리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결론에 도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더 주목할 부분은 이것이 사법 절차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료 감정과 디지털포렌식, 법의학, 사고 재구성 등 민간 과학수사 시장이 커지면 전문 인력이 늘고 관련 산업도 성장한다. 법조계의 변화가 새로운 일자리와 기술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제도가 산업을 키우는 셈이다.

우리 과학수사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섰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기관의 역량만 키우는 경쟁이 아니라 민간까지 전문성이 확장되는 생태계다. 국과수만 강한 나라보다 국가와 민간 전문가가 함께 증거를 검증하는 나라가 더 성숙한 사법 시스템에 가깝다.

공판중심주의는 재판 절차를 바꾸자는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억울한 사람을 줄이고, 전문가를 키우며, 과학수사의 저변을 넓히는 제도적 토대다. 과학수사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장비가 아니라 더 치열한 법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사진원은미 기자
[사진=원은미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