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정의한 진정한 ‘객관적 문민통제(Objective Civilian Control)’는 문민 정치권력이 군 고유의 작전적·기술적 영역을 철저히 인정하고, 그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할 때 극대화된다. 반면, 군의 인사와 작전에 직접 개입하여 군을 정치화하고 종속시키는 행위는 군을 무력화하는 ‘주관적 문민통제(Subjective Civilian Control)’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 국방부는 문민통제를 명분 삼아 가장 위험한 형태의 주관적 문민통제를 자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방부의 일상적인 합참 작전지휘권 침해다. 국군조직법 제9조에 명시되어 있듯,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각 군 작전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감독권은 오직 합동참모의장의 고유 권한이다. 국방부 장관은 정책과 행정을 관장하는 군정권자(軍政權者)로서 장관의 명령을 합참의장에게 하달할 뿐, 직접 부대를 기동하거나 초병의 위치를 변경하는 작전 지휘관이 아니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의 국방 시스템은 이상적인 문민통제의 모델을 보여준다. 미국 국방부는 예하에 직접적인 군사 작전 사령부를 두지 않는다. 행정과 정책은 국방부가 담당하되, 작전 지휘권은 군사 전문가들의 영역인 통합전투사령부(Combatant Command)에 완전히 위임되어 있으며 군사명령도 군사안보 전문가인 합참을 통해 통합사령부로 하달된다. 정책(군정)과 작전(군령)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에 상호 견제와 전문성의 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간 9·19 군사합의, 연합훈련 조정 등 국가 안보의 핵심 결정부터 육군사관학교 이전 논의, 사관학교 통합론, 군 인사 검증, 군수분야 민간위탁, 군부대경계의 민간위탁 그리고 핵추진 잠수함 같은 특정 무기체계 선정에 이르기까지 국방부는 합참의 전문적인 목소리를 소홀히 다루거나 배제해 왔다. 군사적 합리성과 전문성에 기반해야 할 안보 정책과 군 인사가 정치적 논리나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에 흔들리게 되면, 군의 전문성은 고갈되고 기회주의적 성향의 군인들만 양산될 뿐이다.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삼위일체론’을 통해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군사의 합리주의가 온전히 발현되고 조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의 국방부는 군의 합리주의를 조율하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군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있다.
국방부가 군의 상전 노릇을 하며 군사 지휘권을 남발하는 비정상적인 관행을 끝내지 않는 한, 대한민국의 군사안보는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국방부는 비대해진 직할 부대들을 과감히 정비하고, 합참으로 이전하여 정책 기획이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아울러 군의 작전적 판단과 전문성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 그것만이 군 지휘체계의 붕괴를 막고, 우리 군을 ‘정치적 행정의 희생양’이 아닌 ‘싸워 이기는 정예 국방 조직’으로 되돌리는 유일한 길이다. 아울러 합참의 지휘부 역시 문민통제의 진정한 의미와 전문성의 가치를 다시금 각성해야 할 시점이다.
필자 주요 이력
△합참 군수계획담당 △ 보병 연대장 △ 야전군 군수계획과장 △ 국방부 재난통제시스템 개발 TF장 △독일고군반 수료 △아태안보연구소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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