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 년을 이어온 철기문명이 지금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탄소중립이 철을 만드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고, AI는 제조업의 경쟁 원리를 다시 쓰고 있다. 이 두 개의 파도가 동시에 밀려드는 시대에, 대한민국 산업의 원점(原點)이었던 포스코는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최근 포스코그룹 장인화 회장은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철강·전략자원·에너지를 미래의 3각축으로 삼겠다는 '트리플 코어' 전략을 발표했다. 철강 일변도의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성장동력을 다각화하려는 문제의식은 시의적절했고, 포스코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을 정확히 짚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이 전략이 대한민국 산업의 미래와 온전히 맞물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이 함께 답해질 필요가 있다.
포스코는 왜 존재하는가.
필자는 36년간 포스코에서 철강·건설·무역 분야의 전략기획을 맡았고, 그룹 가치경영실장(구조조정본부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직접 수행하며 회사의 성장과 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하나였다: 기업의 전략은 '무엇을 할 것인가(What)'가 아니라 '왜 존재하는가(Why)'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경제계와 함께 발표한 서남권 메가 프로젝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개별 기업의 투자 규모가 아니었다. 산업을 통해 국가를 어떻게 바꾸고, 지역을 어떻게 살리며, 청년에게 어떤 미래를 열어줄 것인가; 그 철학이 먼저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산업을 이끄는 기업의 전략은 국가의 미래와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1973년 포항제철소는 단순한 제철소가 아니었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는 사명이 있었기에 세계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사명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확장하는 일이다.
이제 포스코가 답해야 할 질문은 "철을 얼마나 만들 것인가"를 넘어선다.
"새로운 철로 인류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필자가 최근 탈고한 원고 『새로운 철로, 인류의 미래를』에서 '신철강위인(新鐵鋼爲人)'이라는 새로운 사명을 제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스코의 존재 이유는 더 좋은 철강회사가 되는 데 머물지 않고, 탄소 없는 철강으로 대한민국 제조업을 혁신하고 세계 산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드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 철학이 함께 세워질 때, 트리플 코어 전략은 한층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다.
첫째, 포항과 광양을 세계 최초의 HyREX 그린스틸 메가 프로젝트로 전환해야 한다. 수소환원제철, 원전 기반 청정전력, AI 스마트팩토리, EPC 기술, 글로벌 표준화를 하나의 국가 프로젝트로 묶는 일이다. 이는 포스코 단독의 투자 계획을 넘어 대한민국 제조업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둘째, 지역을 함께 성장시키는 관점이 보강되어야 한다. 포항과 광양을 생산기지가 아니라 연구개발·창업·대학·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그린스틸 혁신도시로 발전시켜야 한다. 청년들이 수도권이 아니라 포항과 광양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을 때, 포스코의 성장은 국가의 성장과 하나가 된다.
셋째, 포스코는 철강 제품을 파는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기술과 산업 표준을 수출하는 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HyREX, AI 제조혁신, EPC 플랫폼을 결합해 세계 탄소중립 제철소의 표준을 만드는 것; 이것이 트리플 코어 전략의 궁극적 완성형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트리플 코어 전략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답을 제시했다. 여기에 '왜 존재하는가'와 '어떤 기업이 될 것인가'라는 철학적 뿌리가 더해진다면, 전략은 훨씬 더 큰 공감과 실행력을 얻게 될 것이다. 전략은 Why에서 시작해 Who를 거쳐 What과 How로 이어질 때 완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철강산업은 지금 또 한 번의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다. 1973년 포항제철이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었다면, 이제 포스코는 탄소중립과 AI 시대의 산업혁명을 이끌 차례다.
제철보국을 넘어 신철강위인으로. 철을 만드는 기업을 넘어 대한민국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를 만드는 기업으로.
필자 주요 이력
△포스코플랜텍 대표 △ 전남드래곤즈 대표, 포스코 가치경영실장 △포스코 혁신기획실장 △ 포스코 미래전략그룹장 △포스코 경영기획실장 △법무법인 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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