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이란 핵합의 11주년에 해상 봉쇄 재개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EPA연합뉴스]

2015년 7월 14일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주요 6개국과 이란이 이른바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체결한 날이다.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제한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는 대신 국제사회는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로 했다. 이는 이란 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한 대표적인 외교 성과로 평가받았고, 국제사회는 중동의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이같은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인 2018년 JCPOA 탈퇴를 선언하며 대이란 제재를 복원했고, 이란도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하며 맞섰다. 어렵게 쌓아 올린 신뢰는 무너졌고, 현재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의 단초를 제공하게 됐다. 

JCPOA 체결 11주년을 맞은 올해 7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를 재개하고 나섰다. 한때 협상과 타협을 상징했던 날짜가 이제는 봉쇄와 제재, 압박을 상징하는 날로 바뀐 것이다. 외교적 합의가 영원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는 JCPOA만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재집권 이후 상호관세 정책을 앞세워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기존 통상 질서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국제 협약이라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폐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던지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 주요 강대국들도 국제 규범보다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우선하는 모습을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론 국제정치는 원래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세계다. 그러나 최근 국제질서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과거에는 힘이 국제 규범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힘이 규범 자체를 대체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국제법과 외교적 합의보다 군사력과 경제 제재 등이 문제 해결의 우선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협약과 제도도 정치 지도자의 교체나 국내 정치 변화에 따라 쉽게 흔들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더 큰 과제를 던진다. 우리는 국제 규범이 언제나 안정적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협약이 존재하는 것과 실제로 지켜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제 규범이 흔들릴수록 이를 뒷받침할 국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경쟁력이다. 법치와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면서 한국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는 동시에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조선, 방산, 바이오 등 첨단 산업에서 세계를 선도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오늘날 기술력은 산업 경쟁력을 넘어 외교력이며 안보이고 협상력이다. 세계 공급망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기술을 가진 국가는 국제사회에서도 더 큰 발언권을 확보할 수 있다.

협약은 여전히 국제사회의 중요한 기반이지만 협약만으로 평화와 번영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힘의 논리가 커질수록 원칙을 지키는 국가의 신뢰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국력이 더욱 중요해진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협약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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