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사실 잘 안 믿겨요. 주위에서 많이 축하해 주시는데 요즘은 OTT가 대세잖아요. 그런데도 20%가 넘는 시청률이 나오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현실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꿈인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물론 시청자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셔서 나올 수 있었던 결과지만, 현장에 있던 모든 스태프분들, 감독님들, 선배님들이 한 분도 빠짐없이 '김부장' 잘될 거라고 계속 말씀해 주셨어요. 그만큼 다 같이 노력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서수민의 데뷔작 '김부장'을 지켜보는 현실 부모님의 '몰입도'는 그야말로 남달랐다. 극 중 거친 액션을 소화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딸의 낯선 연기를 지켜보며 깊은 '과몰입'을 경험한 것. 화면 속 딸을 마주한 부모님의 시선에는 대견함과 애틋함, 그리고 속상함이 뒤섞여 있었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 주셔서 아버지가 '딸 잘 키웠네'라는 말을 듣고 뿌듯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드라마는 같이 못 봤어요. 아버지가 제가 나올 때마다 너무 격렬하게 반응을 하셔서 저랑 어머니는 방에 들어가서 따로 보기도 했어요. 어머니는 1화를 보시다가 너무 속상해서 못 보겠다고, 배우 안 하면 안 되겠냐고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그냥 그 안에 들어가셨어요. 슬퍼도 하셨다가 질투도 하셨다가, 다음엔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시고 사인도 해달라고 하셨어요."
원작의 오랜 팬이었다는 서수민은 '김부장'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부터 원작 웹툰에 푹 빠져 있었다며 '김부장'의 세계로 직접 뛰어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정말 열렬하게 봤던 것 같아요. 내용도 재미있고 액션의 쾌감도 있어서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서 봤어요. 그러다가 제가 캐스팅이 된 거예요. 제 최애 웹툰 중 하나였는데 거기에 캐스팅이 되고 소지섭 선배님의 딸로 나온다고 하니까 처음에는 정말 믿기지가 않았어요."
원작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만큼 서사의 핵심 열쇠를 쥐어야 하는 신인 배우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기쁨보다 앞선 두려움을 덜어낸 건 지난한 오디션 과정을 거치며 확인한 연출자의 굳건한 신뢰였다.
"부담감은 엄청 컸어요. 내가 이 역할을 맡아도 될까 싶을 정도였어요. 원작 팬들도 있고, 드라마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신인이 '김부장'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주요 인물을 맡으면 연기적인 부분에서 불편해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캐스팅 과정이 한 번에 바로 오케이된 게 아니었어요. 여러 번 오디션도 보고, 감독님이 다른 영상들도 더 찾아보신 뒤에 확신이 들어서 캐스팅하신 거였어요. 그 과정이 한 달 정도 걸렸다고 알고 있어요. 그걸 보면서 감독님이 민지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저를 얼마나 믿어주셨는지가 느껴졌어요. 그래서 걱정은 접고 지금에 충실하자는 마음으로 임했어요."
가장 버팀목이 되었던 건 '아빠' 역의 배우 소지섭이었다. 대선배와의 만남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소지섭의 다정한 배려로 금세 차진 호흡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소지섭과의 첫 만남이) 제일 선명하게 기억나요. 첫 촬영 때부터 소지섭 선배님과 합을 맞추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1부에서 버스를 각각 타러 가야 해서 같은 장소에서 만났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도 많고 카메라도 많아서 '이게 뭐지' 하면서 당황하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뒤에서 '민지 안 춥냐'고 하시면서 맛있는 걸 주시고 잘 부탁한다고 해 주셨어요. 처음부터 잘 대해 주셔서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유지된 두 사람의 유대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짙어지는 부녀의 비극적 감정선을 이어가는 데 큰 몫을 했다. 억지로 끌어올린 감정이 아닌, 자연스레 배어 나온 몰입의 결과였다.
"초반에 슛 들어가기 전에도 대화를 많이 나눴고, 장난도 많이 쳤어요. '아빠, 내가 알아서 할게. 왜 그래'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면서 부녀 신을 찍을 때 이질적인 부분이 덜했던 것 같아요. 촬영하지 않을 때도 딸처럼 대해 주셔서 제 아빠는 따로 있는데도 아빠가 아닌 사람에게 아빠 같다는 감정이 드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작품인 것도 알고 다 짜인 상황인 것도 아는데 그런 감정이 어떻게 들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7화나 10화 때 감정적인 부분을 더 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연기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아빠와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슬퍼서 울음을 못 그쳐 NG가 난 적도 있었고, 감정을 올리기 위해 애쓴다기보다 감정을 없애기 위해 준비했던 시간도 있었어요."
소지섭뿐만 아니라 극 중 '삼촌'으로 등장하는 한수 역의 최대훈, 진철 역의 윤경호와의 호흡도 인상 깊은 대목이다. 서수민은 실제 '삼촌' 같았던 최대훈, 윤경호의 도움으로 낯선 현장에서 든든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거들었다.
"한수(최대훈 분) 삼촌은 제가 연기적으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먼저 와주셔서 '민지 힘들어?' 하시면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셨어요. 덕분에 방향성을 잡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진철(윤경호 분) 삼촌은 제가 주눅이 들었을 때 스태프분들이 다 들으라는 듯이 '민지 너무 잘한다'고 계속 칭찬해 주셨어요. 그래서 연기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셨죠. 한 분은 길을 찾게 해 주시고, 한 분은 상태를 만들어 주시고, 아빠는 뒤에서 묵묵히 제가 할 수 있게 지켜봐 주셨어요. 세 분이 주는 에너지가 다 달랐지만, 정삼각형 안에 들어 있는 동그라미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어졌다. 서수민은 소지섭과 윤경호, 최대훈과 함께 장난을 치고 이른바 '젠지샷'을 함께 찍으며 실제 가족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배님들이랑 사진 찍을 때 MZ샷이나 젠지샷을 많이 찍었어요. 윤경호 선배님이 '오늘은 뭘 찍을까? 누굴 공략할까?' 묻고 함께 포즈를 연구하기도 했어요. 특히 마지막 방송 무렵에는 소지섭 선배님이 먼저 '악마 하트를 하자'고 제안해 주셔서 놀랐어요. 제가 '아빠, 악마 하트가 뭐야?'라고 물으니 직접 포즈를 알려주시는 거예요. 아빠가 '젠지샷'을 남몰래 공부하셨다는 게 귀엽고 재밌었어요. 하하. 다들 열심히 어울려 주셔서 감사했어요."
2007년생인 서수민은 '김부장' 촬영 당시 실제 고등학생 신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실제 '고등학생' 감성을 활용, 작품과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더하곤 했다.
"(고등학생 감성이) 많이 반영된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촬영을 해서 성인이 된 뒤의 경험보다 고등학생 때의 경험이 아직 많이 기억에 남아 있었어요. 공부하는 장면이나 폰을 보는 포즈, 아빠를 대할 때의 느낌 같은 것들이요. 아빠가 '김민지 일어나' 하면서 씻고 준비하라고 하는데, 민지가 화장실로 안 가고 소파에 가서 또 자는 장면도 제 일상이 조금 추가된 장면이에요. 그런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첫걸음부터 만만치 않은 성취를 쥔 만큼, 다음 행보를 향한 대중의 기대는 자연스레 커진 상황. 서수민 역시 기분 좋은 부담감 속에서 배우로서의 다음 페이지를 신중하게 넘길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에 할 때 이 정도로 잘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있어요. 그래도 다음 작품에서는 민지 말고 또 다른 인물로 각인될 만큼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작품을 찾아보고 있어요. 아직 차기작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유명해지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오래 기억에 남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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