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파트너십은 한국 영화·영상산업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은 시기에 나왔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객은 줄었고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콘텐츠 유통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까지 제작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K-콘텐츠의 세계적 위상과 별개로 국내 제작 현장이 녹록지 않은 이유다.
관건은 8000억원이라는 규모보다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다. 제작비를 지원하고 작품 수를 늘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 기획·개발에서 제작·유통, 해외 진출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자금이 흐르고, 창작자와 제작사가 성과를 나눠 가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먼저다. 특히 콘텐츠의 핵심 자산인 지식재산권(IP)을 국내 제작사가 직접 확보하고 키워나갈 수 있느냐가 이번 투자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프랑스와의 공동제작 역시 같은 잣대로 봐야 한다.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제작 역량을, 프랑스는 탄탄한 영화산업 기반과 유럽 시장 연결망을 갖고 있다. 두 나라의 협력은 제작비 분담을 넘어 한국 콘텐츠의 유럽 진출과 투자·유통망 확대로 이어져야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특정 글로벌 플랫폼에 지나치게 의존해온 K-콘텐츠 해외 진출 구조를 완화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독립·예술영화와 신인 창작자 지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대목이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자본은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으로 쏠린다. 정책 투자가 시장이 선뜻 감수하기 어려운 도전과 실험에 기회를 주는 이유다. 그래야 제2, 제3의 봉준호와 박찬욱이 나올 자리도 남는다.
AI 시대에 맞는 원칙을 세우는 일도 미룰 수 없다. AI 활용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배우의 초상·음성권과 저작권, 학습 데이터, 창작자의 정당한 보상 문제까지 방치해선 곤란하다. 기술 혁신과 창작자 보호가 함께 가는 기준을 만드는 데 한·프랑스 양국이 앞장설 필요가 있다.
K-콘텐츠는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증명했다. 이제는 몇몇 작품의 성공을 산업 전체의 힘으로 바꿔야 할 때다. 5년 뒤 성과를 가늠할 잣대도 '8000억원을 얼마나 썼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창작자와 제작사가 성장했고, 얼마나 많은 IP를 확보했으며, 얼마나 넓은 시장을 새로 열었느냐가 돼야 한다. 뤼미에르 파트너십이 이름값을 하려면 지금부터의 집행이 그 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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