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가입자 보험료율은 그대로이고 지역가입자의 부과점수당 금액도 211.5원에 묶였다.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으면서 중증·희귀난치질환자 등 197만명에게 연간 최대 8000억원을 투입해 보장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고물가와 경기 둔화 속 가계 부담을 덜고 취약계층의 의료 안전망을 두텁게 하겠다는 취지는 탓할 수 없다.
문제는 정책의 표리와 속내다. 복지부는 반도체 경기 회복에 따른 세수·보험료 수입 증가 기대와 30조원 안팎의 적립금을 동결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적립금은 당장의 지출을 감당할 완충 장치일 뿐, 지속 가능한 수입원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수입 기반은 닫아건 채 수천억원대 지출 확대를 공언하는 것은 ‘조삼모사’이자 근시안적 포퓰리즘이다.
집권 여당과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의식해 국민적 반발이 큰 보험료 인상을 피하려 했다는 정치적 야합 의혹도 피하기 어렵다. 백년대계여야 할 사회보험 정책이 여론 눈치 보기용 카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초고령화로 노인 진료비가 급증하면서 지출 압력은 커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등의 중장기 추계는 구조 개혁 없이는 당기수지 적자 전환과 준비금 고갈을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지출 누수를 막고 수입 기반을 다져야 할 주무 부처가 지출은 키우면서 수입원 확충을 손놓는 것은 직무유기이자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일이다.
보험료율 인상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전에 재정 누수 차단과 지출 구조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실손보험과 결탁한 과잉 비급여 진료를 수술대에 올리고, 불필요한 과다 외래진료의 본인부담 차등제를 실효성 있게 재설계해야 한다.
소득 중심 부과체계 개편을 완결하고 사문화되다시피 한 국고지원 비율(20%) 규정을 법제화해 재정 투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정치적 득실에 취해 구조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건보 재정 파탄의 청구서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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