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또 하나의 불을 손에 넣었다. AI다. 첫 번째 불이 인간의 손과 육체를 확장했다면 두 번째 불은 인간의 두뇌와 지성을 확장한다. 첫 번째 불은 인간보다 똑똑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 불은 다르다. 언젠가는 인간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빨리 판단하며, 인간이 풀지 못한 문제까지 풀어내는 지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두 번째 불은 첫 번째 불보다 훨씬 위대하면서도 훨씬 위험하다. AI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높여 인류를 전례 없는 풍요의 세계로 이끌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는가 하면, 인간보다 뛰어난 범용인공지능(AGI)과 초지능(ASI)이 등장하면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지위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문제는 AI 자체가 아니다. 그 불을 누가 들고, 무엇을 위해, 어떤 원칙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매일경제가 올해 세계지식포럼의 화두로 ‘프로메테우스의 순간: 공존지능 세계를 설계하라’를 내건 것도 그래서 의미가 깊다. 인간은 AI를 통해 사고와 행동의 지평을 넓히되 AI는 인간이 세운 규범과 가치 안에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인간과 AI가 서로를 밀어내는 경쟁지능이 아니라 서로의 능력을 높이는 공존지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인류에게 위협이 될 것인가, 번영의 도구가 될 것인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
대한민국에는 또 하나의 냉혹한 질문이 있다. AI 혁명 이후 다시 쓰일 세계 국가 경쟁력 지도에서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에 설 것인가. 세계지식포럼에서 만난 수많은 세계적 석학과 기업인 가운데 특히 네 사람의 목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로만 얌폴스키, 세바스찬 스런, 리처드 도킨스, 에릭 브린욜프슨이다. 같은 AI를 바라보면서도 네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한 사람은 멈출 줄 알아야 한다고 했고, 한 사람은 컴퓨터 밖 현실세계로 나가라고 했으며, 한 사람은 AI 이후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한다고 했다. 마지막 한 사람은 AI를 도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인간과 조직을 다시 설계하라고 했다. 네 현자의 AI 외침이다.
이것은 기술 혐오가 아니라 문명의 브레이크에 관한 질문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기술을 먼저 만들고 문제가 발생하면 법과 제도를 뒤따라 만들었다. 자동차가 나온 뒤 교통법규가 만들어졌고 인터넷이 나온 뒤 개인정보 보호제도가 생겼다. 하지만 초지능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한 번의 실패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기술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AI 경쟁에서 ‘누가 먼저 만드느냐’만큼 중요한 것은 ‘인간이 끝까지 통제할 수 있느냐’이다. 문명에는 액셀러레이터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브레이크도 필요하다. 얌폴스키는 그 브레이크 앞에 서 있는 현자다.
세바스찬 스런의 시선은 정반대 방향을 향한다. 그는 AI가 컴퓨터 화면 밖으로 걸어 나오는 순간을 바라본다. 피지컬 AI(Physical AI)다. 생성형 AI가 지식과 사무노동을 변화시켰다면 피지컬 AI는 자동차와 로봇, 공장과 물류센터, 농장과 조선소, 병원과 도시를 직접 움직인다. AI가 눈과 귀를 얻고 팔과 다리를 얻으며 현실세계로 걸어 나오는 것이다.
스런은 그 변화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스탠퍼드대 교수 시절 자율주행차 ‘스탠리’를 개발해 미국 국방부 산하 DARPA 그랜드 챌린지에서 우승했고 이후 구글의 자율주행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오늘날 웨이모로 이어지는 자율주행 혁명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피지컬 AI가 현실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다음은 로봇이며 그 중심에는 휴머노이드가 있다. 스런은 휴머노이드가 산업현장에서 시작해 결국 가정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청소하고 물건을 나르고 노인과 환자를 돌보며 인간의 일상을 돕는 로봇 시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산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쟁에서 지금 가장 빠르게 달리는 나라는 중국이다. AI 패권을 이야기하면 흔히 미국을 먼저 떠올린다. 최첨단 AI 모델과 반도체 설계, 클라우드와 플랫폼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지만 AI가 육체를 얻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2026년 상반기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은 2만2000대를 넘어섰고 시장 상위 5개 기업을 중국 업체들이 휩쓸었다. 애지봇이 세계 시장의 43% 이상을 차지했고 유니트리가 31% 수준을 기록했다. 두 회사만 합쳐도 70%가 넘는다.
중국의 경쟁력은 단순히 로봇을 잘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빨리 만들고, 싸게 만들고, 실제 현장에 대량 투입하고, 거기에서 다시 데이터를 얻는 능력에 있다. 이것이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이다. 생성형 AI는 인터넷의 텍스트와 이미지에서 배웠지만 피지컬 AI는 현실세계에서 배워야 한다. 로봇이 물건을 집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공장에서 부품을 옮기고 물류창고에서 상품을 분류하는 수억 번의 행동이 모두 데이터가 된다. 많이 움직이는 로봇이 많은 데이터를 만들고, 많은 데이터는 더 좋은 AI를 만들며, 더 좋은 AI는 다시 더 좋은 로봇을 만든다. 이 순환을 먼저 만드는 나라가 피지컬 AI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거대한 제조업 공급망과 내수시장, 수많은 부품업체와 엔지니어, 상대적으로 빠른 실증 환경을 갖고 있다. 미국이 AI의 ‘두뇌’에서 앞선다면 중국은 AI의 ‘몸’을 빠르게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질문은 더욱 근원적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그는 기술자가 아니라 진화생물학자다. 그는 인류 문명의 결정적 전환점을 언어와 문자, 인쇄술과 인터넷에서 찾고 이제 AI와 양자컴퓨팅, 생명공학이 동시에 발전하는 새로운 문명의 문턱을 바라본다. 그가 던지는 질문은 섬뜩하다. AI가 인간보다 더 지적인 존재가 된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것인가.
과거 기계는 인간의 근육을 대신했다. 증기기관은 인간보다 힘이 셌고 자동차는 인간보다 빨랐으며 계산기는 인간보다 계산을 잘했다. 그래도 인간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존재’라는 마지막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짜고 수학과 과학 문제를 풀며 인간의 감정과 문학작품까지 해석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도킨스가 묻는 것은 결국 이것이다.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는 시대에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AI 시대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결국 인간의 문제다.
에릭 브린욜프슨 스탠퍼드대 교수는 AI를 경제와 생산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AI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생산성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보지만 중요한 조건을 붙인다. AI를 도입했다고 생산성이 저절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그의 ‘생산성 J-커브’가 있다. 새로운 기술이 기업에 들어오면 처음에는 비용이 증가하고 기대했던 생산성은 나타나지 않는다. 기술에 맞춰 업무 프로세스를 다시 설계하고 사람을 교육하며 조직을 바꾸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증기기관도 그랬다. 공장에 증기기관 한 대를 가져다 놓았다고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생산라인과 노동방식, 물류와 조직 전체를 바꾸고 나서야 생산성이 폭발했다. AI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비싼 AI를 구입하고 직원들에게 계정을 하나씩 나눠준다고 AX가 되는 것이 아니고, 보고서를 조금 빨리 만들고 이메일을 대신 작성한다고 AI 기업이 되는 것도 아니다. 업무를 다시 설계하고 사람을 다시 교육하며 조직을 다시 짜야 한다. AI가 잘하는 것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판단과 창조, 책임과 관계,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브린욜프슨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AI 혁명의 핵심은 AI 자체보다 인간과 조직의 혁신이다.
동시에 AI 혁명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청년 고용이 줄어들 수 있고 자본과 데이터가 소수 기업에 집중될 수 있으며 AI를 잘 활용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 AI가 부를 만드는 것과 그 부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생산성 혁명과 함께 교육과 노동, 분배의 새로운 질서를 준비해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가 인간의 능력을 증폭하도록 설계하는 것, 이것이 브린욜프슨이 말하는 공존의 길이다.
네 사람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하나로 연결된다. 얌폴스키는 안전을 말하고, 스런은 실행과 피지컬 AI를 말하며, 도킨스는 인간을 묻고, 브린욜프슨은 생산성과 공존을 말한다. 브레이크만 밟으면 혁신에서 뒤처지고 액셀러레이터만 밟으면 사고가 난다. 생산성만 추구하면 인간이 소외될 수 있고 인간만 외치면서 기술을 외면하면 국가 경쟁력을 잃는다. 대한민국은 이 네 가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승부할 것인가. 답은 우리의 강점에서 찾아야 한다. 한국에는 반도체가 있고 자동차가 있으며 조선과 배터리가 있고 로봇과 전자산업이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현장이 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다. 새만금이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전북대학교 타운홀 미팅을 전후해 대한민국 피지컬 AI 전략에서 의미 있는 장면이 만들어졌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새만금에 약 9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계획에는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시설, 재생에너지와 수소 생산시설, 로봇·AI·수소기술을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미래형 도시 구상이 포함됐다. 정부도 새만금과 대경권을 피지컬 AI의 주요 생산·실증 거점으로 육성하는 국가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새만금은 이제 단순한 간척지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산업문명을 시험할 거대한 백지다. 20세기 대한민국 산업화에 울산이 있었다면 21세기 피지컬 AI 혁명에는 새만금이 있을 수 있다. 울산은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을 집적시켜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 됐다. 공장이 들어오고 사람이 모였으며 기술과 자본이 따라왔다. 기업과 대학, 협력업체가 생태계를 만들었고 대한민국은 그 힘으로 가난한 농업국가에서 세계적인 제조업 국가로 올라섰다.
새만금에는 새로운 울산의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산업의 내용은 완전히 달라야 한다. AI와 로봇, 반도체와 배터리, 수소와 재생에너지, 자율주행과 스마트농업이 하나로 연결되는 피지컬 AI 산업도시여야 한다.
전북 피지컬 AI 특별위원회도 이 가능성을 국가전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핵심은 단순한 기업 유치가 아니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AI 기반 다크팩토리 국가 실증단지를 만들자는 것이다. AI와 로봇이 제조공정을 스스로 판단하고 운영하는 공장이다. 또 하나는 디지털 트윈 국가 실증사업이다. 공장과 농장, 물류와 도시를 가상공간에 똑같이 구현하고 AI가 먼저 수없이 학습한 뒤 현실세계에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피지컬 AI 스타트업 클러스터다. AI 소프트웨어와 로봇, 센서와 반도체, 자율주행과 산업 플랫폼 기업이 새만금에서 연구하고 실증하고 투자받고 양산하고 세계시장으로 나가게 만드는 생태계다.
전북에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가 있다. 농업이다. 피지컬 AI는 공장에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자율주행 농기계가 들판을 움직이고 농업용 로봇이 파종하고 수확하며 드론이 농작물의 상태를 살핀다. AI가 온도와 습도, 토양과 기후 데이터를 분석한다. 전북의 농생명산업과 피지컬 AI가 결합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AI 농업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 공장은 다크팩토리로 가고 농장은 AI 팜으로 가며 도시는 로봇시티로 간다. 현실세계는 디지털 트윈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목표는 분명해야 한다. 대한민국 피지컬 AI 수도, 전북. 세계 피지컬 AI의 메카, 새만금이다.
여기에서 새만금의 또 다른 경쟁력을 봐야 한다. 지정학이다. 새만금 앞에는 황해가 펼쳐져 있고 그 바다 건너편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다. 이것을 위협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경쟁하면서 활용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세계적인 자동차·반도체·배터리·조선·전자 제조기술이 있고, 중국에는 거대한 로봇 제조 공급망과 부품산업, 대량생산 능력이 있으며, 미국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AI 모델과 소프트웨어, 컴퓨팅 생태계가 있고, 유럽과 일본에는 정밀기계와 소재·부품, 산업자동화의 오랜 경쟁력이 있다.
새만금은 이 네 힘이 만나는 곳이 될 수 있다. 미국의 AI 두뇌, 중국의 로봇 생산력, 일본과 유럽의 정밀기술, 대한민국의 제조 경쟁력을 연결하는 피지컬 AI의 국제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새만금이 바라봐야 할 더 큰 그림이다. 황해는 장벽이 아니라 고속도로다. 과거 황해는 중국의 문명과 한반도의 문명이 오가던 바다였다. 사람과 문자, 종교와 기술, 상품이 이 바다를 건넜다. 21세기에는 AI와 로봇, 반도체와 배터리, 데이터와 인재가 이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새만금은 중국과 경쟁하되 중국과 연결되고, 미국과 동맹하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글로벌 피지컬 AI 자유항을 지향할 수 있다. 물론 기술안보와 데이터안보, 공급망 안전의 원칙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공존은 무방비 개방이 아니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보호할 것은 보호하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전략이다.
세바스찬 스런의 이야기를 대한민국의 언어로 번역하면 결국 하나의 제안으로 귀결된다. 피지컬 AI 해방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무법지대를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 개인정보와 기본권에 관한 규제는 오히려 더 엄격해야 한다. 대신 과거 산업시대에 만들어져 새로운 기술의 실증을 막는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새만금에서는 자율주행차가 달리고 무인 물류차량이 항만과 공장을 오가며 드론이 하늘을 날고 휴머노이드와 협동로봇이 공장에서 인간과 함께 일해야 한다. 농업용 로봇과 자율주행 농기계가 들판에서 움직이고 AI가 공장을 관리하며 도시 전체가 디지털 트윈으로 연결돼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다시 AI가 학습해야 한다. 실증에서 데이터, 학습, 개선, 인증, 표준화, 양산, 수출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한곳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새만금이 진정한 피지컬 AI 도시가 된다.
현대차그룹의 투자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삼성과 SK, LG 같은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참여해야 하고 로봇기업과 반도체기업이 와야 하며 AI 스타트업이 와야 한다. 세계의 대학과 연구소가 와야 하고 벤처캐피털과 글로벌 자본이 와야 한다. 무엇보다 젊은이가 와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힘은 건물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 세계 최고의 인재와 기술, 대학과 자본, 창업과 실패가 한곳에서 끊임없이 순환하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존재한다. 새만금도 그래야 한다. 전북대와 국내외 대학이 피지컬 AI 인재를 길러야 하고 교육에서 연구로, 연구에서 실증으로, 실증에서 창업으로, 창업에서 양산으로, 양산에서 세계시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현대 산업사를 돌아보면 국가의 운명을 바꾼 몇 개의 도시가 있다. 포항에는 철강이 있었고 울산에는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이 있었으며 구미에는 전자가 있었고 창원에는 기계가 있었다. 그 도시들이 대한민국 산업화를 만들었다. AI 시대에는 새로운 산업지도가 필요하고 그 지도에 새만금을 넣어야 한다.
울산의 산업화는 태평양으로 나가는 대한민국의 문을 열었다. 새만금의 피지컬 AI는 황해를 건너 중국과 아시아, 다시 세계로 나가는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 그래서 새만금의 꿈을 전북만의 지역개발 사업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의 국가전략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목표는 분명하다. 로봇을 잘 쓰는 나라에서 세계 최고의 로봇을 만드는 나라로 가야 한다. 더 나아가 로봇을 만드는 나라를 넘어 로봇이 배우고 일하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산업문명의 표준을 만드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제 세계지식포럼의 네 현자를 다시 불러보자. 로만 얌폴스키는 우리에게 브레이크를 가르쳤고 세바스찬 스런은 AI에 몸을 주고 현실세계로 내보내라고 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 AI 앞에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었으며 에릭 브린욜프슨은 AI와 인간이 함께 일하도록 조직과 노동을 재설계하라고 했다. 네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모인다. 기술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갖더라도 인간이 넘겨서는 안 될 마지막 영역이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무엇이 정의로운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자유로워야 하는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의 최종 판단까지 기계에 맡기는 순간 인간은 문명의 주체에서 객체로 내려앉는다.
AI에는 지능이 있을 수 있지만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AI에는 지식이 있을 수 있지만 지식과 지혜는 같은 것이 아니다. AI에는 엄청난 계산능력이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계산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기술만큼 철학이 필요하고 과학만큼 인문학이 필요하다. 지능이 강해질수록 인간의 정신은 더욱 깊어져야 한다. 진리와 정의와 자유가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프로메테우스의 첫 번째 불은 인간에게 문명을 주었다. 두 번째 불은 인간에게 문명의 방향을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불보다 지혜로운 인간이 될 것인가, 자신이 만든 불에 지배당할 것인가. 대한민국도 선택해야 한다. 남이 만든 AI를 사용하는 나라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AI에 몸을 주고 산업과 제조, 농업과 도시로 내보내 세계의 새로운 산업표준을 만드는 나라가 될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가 있고 자동차가 있으며 조선과 배터리가 있고 로봇과 세계 최고의 제조업이 있다. 그리고 황해를 향해 펼쳐진 새만금이 있다. 그 바다 건너에는 세계 최대의 로봇 생산국 중국이 있고 바다 너머에는 일본이 있으며 태평양 건너에는 미국이 있다. 유라시아의 끝에는 유럽이 있다. 새만금은 그들을 연결할 수 있다.
미국의 AI, 중국의 로봇, 일본과 유럽의 정밀기술, 대한민국의 제조업이 만나 경쟁하고 협력하는 세계 피지컬 AI의 교차로, 그것이 새만금의 더 큰 꿈이어야 한다. 울산이 대한민국 산업화의 성지였다면 새만금은 대한민국 AI 산업혁명의 성지가 될 수 있다. 아니, 대한민국에만 머물 이유도 없다. 새만금을 세계 피지컬 AI의 성지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곳에서 로봇을 만들고 AI를 학습시키며 미래의 공장과 농장을 시험하고 인간과 로봇이 함께 살아갈 도시를 만들어보자. 그리고 그 경험과 기술과 표준을 세계로 수출하자.
프로메테우스가 가져온 두 번째 불은 이미 우리 손에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불이 아니다. 그 불을 들고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인간의 지혜다. 네 현자의 외침도 결국 그 한마디로 모인다.
AI의 미래는 AI가 결정하지 않는다. 인간이 결정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대답해야 한다. 진리와 정의와 자유를 지키면서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겠다고, 그 거대한 실험을 대한민국에서 시작하겠다고 말이다.
대한민국 피지컬 AI 수도, 전북. 세계 피지컬 AI의 메카, 새만금.
프로메테우스의 두 번째 불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산업문명으로 밝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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