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경기는 어렵고 월급은 줄어들고 있는데 오히려 물가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세계 3대 경제권인 미국, 유럽, 일본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 이하로 떨어져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4.1% 오른 한국은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물가 당국에 묻고 싶다. 유독 우리만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4% 이상 급등한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우리의 환율이 더 크게 출렁거리고 채권 시장 또한 그러해 여건이 여의치 않다는 점을 살필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 대비 지나친 물가 급등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특히 한국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이른바 ‘MB품목’이라 불리는 이명박 정부 집중관리 52개 주요생필품의 상승세가 주도하고 있다. ‘MB품목’ 52개 가운데 지난 2월보다 가격이 내려간 품목은 불과 15개에 불과하다.
이 중 32개 품목의 가격은 한 달만에 최고 12.4%까지 올랐다. 휘발유는 10.9%, 양파는 12.4%, 밀가루와 과자류는 0.5%, 콜라와 사이다, 식용유, 세제, 식초, 소주 등이 6%에서 10%까지 오르더니 다시 설탕과 밀가루 값이 들썩인다.
1년 전과 비교해 가격이 내려간 품목은 모두 11개로 ‘MB품목’ 중 20%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당분간 물가는 도미노처럼, 장마에 논 물꼬 트인 것처럼 쉽게 안정되긴 어려워 보인다. 꼴뚜기 뛰니 망둥이 뛰듯 모든 생필품이 들먹거리고 있어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 같은 물가 오름세에 대해 업계에서는 ‘환율 급등으로 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지난해 12월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에서 현재 150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어 30%이상 올랐으니 그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특히 식품업체들은 수입원가 상승과 환차손으로 50~60%의 원가상승 부담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의 ‘서민물가 안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매분기 적자를 이어나가고 있는 게 업계의 현실이다.
정부는 돈이 돌지 않는다며 국민들에게 ‘지갑을 열라’고 강조하고 있다. 급등하는 소비자 물가로 인해 경기침체가 가속화 하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일자리가 있어도 ‘잡셰어링’ 등으로 소득이 줄게 마련인데 자꾸 지갑을 열라고 한다. 그러나 지갑을 열어봤자 오히려 물가인상만 부추기는 꼴이 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다수 국민들은 우리 경제가 구제금융 때보다 더 어렵다며 ‘물가를 잡아 달라’고 울부짖었다. 농산물 값 인상에 자극받아 물가 전반이 뛰는 이른 바 애그플레이션 현상으로 인해 ‘삶의 질이 급격히 하락할 우려가 높다’고 아우성 쳐 왔다. 하지만 이 같은 두려움을 비웃듯 환율 상승이 계속되면서 원재료 공급가 급등으로 관련 상품들이 인상되거나 인상이 임박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서민은 기존 부채에다 실물경기 침체에 의한 가계 수입 축소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는다. 소비가 줄면서 기업 실적이 악화되고 그에 따라 실물경기가 더 침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러다가 전기 요금조차 내지 못하는 가계가 늘어날 것이 염려될 정도다. 학원비도 이미 인상 도미노 행진을 이어오고 있고, 곤두박질 친 원화에 자녀 유학비를 대지 못한 중산층 기러기 아빠들 또한 고민에 빠진 지 오래다.
그렇지 않아도 돈의 가치가 뚝 떨어져 주부들마다 ‘10만원을 갖고 시장을 봐도 장바구니가 너무나 가볍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물가는 불가역성 속성을 갖고 있어 한번 오르면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바로 서민경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서민 중산층, 차상위계층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 아니 거의 전 국민이 끝 모르는 경제 고통에 시달리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우선 물가라도 잡아야 기본적 생활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다. 2월 정쟁 이후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외유를 하고, 정부는 ‘잡셰어링’이라며 월급을 깎는 정책을 편다. 물론 있는 돈을 서로 나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나, 서민들은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난 1년 정부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성장’에서 ‘물가 안정’으로 돌려 잡았다. 그에 따라 통신 요금 감면, 신용 회복 기금 설립 등의 정책을 펴 서민들에게 적지 아니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오늘 당장 그리고 직접적으로 서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농산품, 공산품 값의 폭등을 막아야 정책의 실효를 체감할 수 있다. 민심은 바로 천심이요, 민생경제는 나라경제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이상준 산업부국장 bm2112@ajnewso.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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