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후퇴로 세계 경제를 주름잡아 온 '주식회사 미국'의 위상과 명예가 바닥에 떨어졌다. 반면 신흥국의 상당수 기업들은 투자자들의 잇딴 러브콜로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글로벌 리더를 자처하던 미국 기업들이 불황의 된서리를 맞게 된 것은 단기 이익에 급급해 투자자들의 평가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6일(현지시간) 컨설팅업체인 레퓨테이션인스티튜트(RI)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200개 기업'을 소개하며 이들 기업들이 불황에도 네임밸류를 높일 수 있었던 비결을 공개했다.
RI에 따르면 올해 미국의 금융업계와 자동차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가는 2006년 이후 평균 10% 이상 떨어진 반면 이머징시장의 에너지 및 금융 부문 기업들은 불황에도 전 세계로부터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명성을 떨쳤다.
특히 중국과 인도 기업들의 선전이 돋보였다. 중국은 중국제일자동차그룹 등 21개 기업이, 인도는 타타그룹 등 17개 기업이 각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또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위권에 있던 미국의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AIG, 워싱턴뮤추얼, 와초비아,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은 하위권으로 곤두박질 친 반면 브라질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 중국 자동차제조업체 제일기차(FAW), 인도 최대 은행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 등 신흥국 기업들은 대거 상위권에 랭크됐다.
이번 조사는 기업이 제품의 품질과 혁신, 재무건전성, 사회공헌도, 리더십, 조직문화, 지배구조 등 7가지 지표를 얼마나 균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가를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이 7가지 핵심 요소들이 균형을 잡지 못할 경우 경기순환에 기업의 실적이 좌지우지돼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포브스는 설명했다.
이처럼 미국 기업의 평판이 유럽, 아시아, 남미지역의 기업들보다 크게 떨어진 것은 이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단기이익에만 급급한 결과라고 포브스는 지적했다. 이들은 주주들의 기대치를 넘는 실적을 거두기만 하면 주식시장이 끝없이 오를 것이라고 믿으며 신기루를 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금융위기로 주식시장은 붕괴했고 기업들은 사상 최악의 손실을 기록했다.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자 소비자와 투자자, 정부는 곧 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 사이 신흥국 기업들은 성장에 박차를 가하며 불황을 슬기롭게 넘기고 있다. 주주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공을 들여 온데다 이들의 불안심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 덕분이라고 포브스는 분석했다.
일례로 인도 정보기술(IT)업체인 인포시스의 창업자이자 회장인 나라야나 무르티는 "가치 창출의 키워드는 기업 내부 및 외부 환경의 변화에 민첨하게 반응하는 것"이라며 "고객과 투자자, 정부, 사회로부터 두루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이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 이를 즉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외부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략은 인포시스가 인도 IT업계 2위로 부상하는 데 원동력이 됐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줬다. 실제 인포시스의 2008회계연도 4분기(2009년 1~3월) 순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 늘어난 161억 루피(약 3억22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번 조사에서 상위에 랭크된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를 임직원뿐 아니라 주주들과 공유해 두터운 신뢰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라고 포브스는 설명했다.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은 이들 기업은 직원들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 업무에 대한 집중도를 높였고 기업 가치 제고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조직 문화를 이끌어냈다. 또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사회적 책임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지배구조와 실적으로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했고 내부와 외부를 막론한 신뢰를 바탕으로 어느 기업보다 신속하게 불황을 극복하며 가치 창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이들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1% 오를 때마다 투자 금액과 시장점유율도 각각 1% 올랐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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