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에 억류돼 있던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가 탈북책동, 체제비난 등 혐의로 억류된지 136일만인 13일 석방되기까지 정부와 유씨 소속회사인 현대아산은 치열한 '물밑 노력'을 전개했다.
정부는 지난 3월30일 북측이 유씨를 억류한 이후 변호인 입회나 면회 등을 일체 허용하지 않자 통일부 대변인 브리핑 등을 계기로 항의의 뜻을 밝히는 한편 북한에 대사관을 둔 영국.중국 등 외국 정부를 통해 대북 압박을 시도했다.
이어 4월21일 북한의 제의로 진행된 남북 당국자들간의 '개성접촉'과 6~7월 세차례 열린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매번 유씨 석방 및 접견 허용을 요구했으나 북측은 응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초. 7월 초 북측이 현대아산을 매개로 한 유씨 관련 남북간 협의에 응하면서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현대아산 서예택 관광경협본부장 일행은 7월초 중국 선양(瀋陽)에서 북한 보위부 인사들과 유씨 문제와 관련한 협의를 진행, 입장 차를 좁혀 나가기 시작했다.
현대아산을 통한 협의에서 남과 북은 유씨 석방의 '조건'에 대해서도 개략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유씨를 인도주의 차원에서 석방하고 정부는 민간을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한다는데 양측이 개략적인 의견일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지난 3일 북한 핵실험(5월25일) 이후 보류해 뒀던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35억여원)을 결정하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민간 대북지원단체들의 방북 제한을 단계적으로 풀기 시작한 것도 유씨 문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어 8월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전격 방북, 다음 날 억류돼 있던 여기자 2명을 데려온 이후 유씨 석방은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북측도 여기자 석방과 같은 맥락에서 유씨를 석방하는 것이 북미 양자 협상 개시를 위한 우호적인 환경 조성에 득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무렵 정부도 '미국은 여기자를 구해오는데, 유씨는 어떻게 되느냐'는 여론에 직면했다.
유씨 문제를 털고 가야할 필요를 남북 양측 모두 느끼게 된 것이다.
유씨 석방의 결정적 계기는 현정은 회장이 지난 4일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6주기 행사때 평양에서 온 리종혁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마련됐다.
현 회장은 "여러 현안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에 갔으면 한다"고 제안, 리 부위원장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사흘 뒤인 7일 방북 초청장을 접수했다. 이때 이미 북측은 유씨를 8.15 이전에 석방한다는 복안을 굳힌 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7일 "수면 위에서 뭐가 잘 안 보인다고 해서 수면 아래 움직이는 무수한 '물갈퀴 질'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당초 현 회장이 10일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하고 다음 날인 11일 유씨가 석방되는 방안이 회자됐으나 결국 현 회장 체류 일정이 하루씩 두차례 연장된 가운데 유씨는 13일 오후에야 자유의 몸이 됐다.
한편 유씨 석방은 이날 오후 5시10분 그의 신병이 현대측에 인도되는 순간까지 내밀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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